갈대는 바람을 머금고 운다. 흐르는 강가에 촘촘히 서 있는 그 키 큰 식물들이 몸을 흔드는 소리는, 한낮의 소음보다는 해질녘의 고요에 어울리는 노래다. 나는 그 갈대숲 사이를 지나 붕어 낚시터로 향했다. 갈대들이 부대끼는 소리에 마음이 스며들었고,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나는 무언가 오래된 기억들을 되씹는 기분이었다. 낚싯대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바람이 갈대를 흔들 듯 나 역시 내면의 갈피를 들춰내며 천천히 물가에 다다랐다. 저수지 가장자리는 갈대가 우거져 있었고, 그 사이로 겨우 몸 하나 들어갈 만큼의 빈 틈이 있었다. 나는 마치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처럼 조용히 그 틈에 들어섰다.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고, 갈대는 쉬지 않고 속삭였다. 나는 가만히 낚싯대를 던지고 찌를 세운 뒤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그것은 내 마음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도시의 소음에 가려 묻혀 있던 내면의 파동들이 바람을 따라 올라오는 듯했다. 바람은 방향을 바꾸며 갈대숲의 이곳저곳을 휘돌았고, 갈대는 한 번도 같은 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했다. 같은 슬픔이라도 날마다 울림이 다르고, 같은 그리움도 때마다 결이 다르다. 붕어 낚시는 그래서 의미가 깊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자연과 연결되며, 내면의 가장 깊은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갈대의 바람처럼 규칙적이지도 않고, 쉽게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용히 귀 기울이면 들린다. 그건 눈앞에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렴풋이 올라오는 어떤 흐름이다. 낚시의 시간은 그런 감정과 만나는 시간이다.
찌가 움직이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오늘 단지 이 갈대숲에 있고 싶었다. 눈앞의 찌를 바라보면서도 마음은 저 멀리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학창 시절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강변의 갈대숲이 떠오르고,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갔던 낚시터의 바람결이 기억났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지만, 낚시터에만 오면 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이 우리를 더 가까이 묶어주었고, 말보다 진한 교감을 만들었다. 나는 어느새 그분을 닮아 있었고, 낚시를 할 때면 스스로도 더 말을 아끼게 된다. 사람은 어쩌면 자주 가는 장소의 리듬을 닮아가는지도 모른다. 낚시터의 고요함, 갈대숲의 바람소리, 찌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시간들. 이런 것들이 나를 만들었고, 나의 감정도 그 속에 묻혀 있다. 어느 순간 찌가 살짝 기울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받아들였다.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누군가가 내 마음에 답장을 해준 것처럼, 그것은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붕어 한 마리가 갈대숲의 바람을 가르며 내게 다가온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들었고, 물속에서 은빛이 반짝였다. 그 작은 생명체는 생각보다 묵직했고, 나는 그것을 품에 안듯 손에 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붕어의 눈은 놀라움보다는 순응에 가까웠다. 마치 이미 이 만남을 알고 있었다는 듯, 저항 없이 내 손에 안겨 있었다. 나는 그 붕어를 물속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오늘의 이 만남은 낚아 올리는 것보다 흘려보내는 데 더 의미가 있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도록. 감정이란 것도 결국 그러한 것이다. 붙잡으면 아프고, 흘려보내면 향기가 남는다.
나는 다시 찌를 세우고, 손을 턱에 괸 채 갈대숲을 바라보았다. 해는 점점 낮아지고, 바람은 여전히 갈대숲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전하고 싶지만 말을 아끼는 사람처럼, 갈대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말 대신 몸으로 마음을 전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이 되어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한 점 쉼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붕어 낚시는 그런 나를 만들어준다. 시간과 감정의 리듬을 느끼게 하고, 기다림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재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대개 천천히 다가오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붕어 한 마리도, 마음속의 평안도, 그리고 진정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이 날의 낚시는 특별한 사건 없이 흘러갔다. 입질은 드물었고, 고기는 몇 마리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오래도록 울릴 메아리 하나가 남았다. 갈대숲의 바람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마주했고, 묵은 감정들을 어루만졌으며, 흐르는 마음이 결국 다시 머무는 자리를 찾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낚시는 단지 고기를 잡는 일이 아니다. 그건 감정과 기억, 삶의 방향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드는 행위다. 갈대는 여전히 흔들리고, 바람은 여전히 분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이 자리를 기억하며 언젠가 또 돌아올 것이다. 낚시는 내 삶의 쉼표이자, 느낌표이며, 가끔은 마침표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