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겨울 강의 적막 속에서 들려온 나의 목소리

by 남반장 2025. 10. 4.
반응형

바람이 먼 산 너머에서 불어왔다. 겨울 강은 모든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얼음은 아직 강 전체를 덮진 못했지만, 수면 가까이에서 숨죽이며 고요히 얼어가고 있었고, 강을 따라 늘어선 갈대숲은 그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조용히 낚싯대를 들고 그 적막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고, 새소리도 멎은 시간, 사람의 발자국조차 없는 설핏한 눈길 위를 걷는 그 감각은 마치 현실이 아닌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겨울 낚시는 언제나 쓸쓸하다. 그러나 그 쓸쓸함이 바로 내가 이 계절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말 없는 강과, 얼어붙은 바람과, 낚이지 않는 찌 하나. 모든 것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내 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삶은 수많은 선택과 후회의 반복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이 내 안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 누군가의 기대, 현실의 무게가 나를 천천히 밀어냈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흐르기만 했다. 그런 나를 되찾기 위해 나는 낚시를 한다. 강가에 앉아 있는 이 고요한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다. 추위 속에서도 나는 낚싯대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손끝이 얼고, 발등이 시리고, 얼굴이 아릴수록 나는 더 선명해졌다. 육체가 고요히 침묵할수록, 마음은 오히려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인간은 끝없이 바깥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멈춰 서서 안을 들여다보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찌가 꿈틀거리며 물속으로 잠겼다.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낚싯대를 들어 올렸고, 짧은 손맛이 손끝을 스쳤다. 그러나 고기는 미끼만 물고 도망쳤는지, 낚싯대는 허공을 가르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짧은 감각 속에, 나는 어쩐지 오래된 감정 하나를 본 듯했다. 잡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손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허망함. 누군가의 사랑도, 삶에서의 성취도, 심지어는 내 자신조차도, 어느 순간 나는 놓치고 있었고, 그 놓침은 어김없이 나를 다시 겨울로 데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찌를 던졌다. 삶은 어쩌면 반복하는 용기의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는 기대를 품고, 다시금 그 자리에 서는 것. 낚시란 결국 그 끈질김의 은유다.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이번에는 강 건너편에서 시작되어 나뭇가지들을 흔들고, 얼어붙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 내 귓가에 닿았다. 그 바람에, 나는 오래전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릴 적 겨울이면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나갔고, 아버지는 늘 아무 말 없이 찌만 바라보곤 했다. 나는 그때 몰랐다. 왜 아버지는 그토록 고요했는지, 왜 추운 날에도 낚시를 그리 사랑했는지.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덧 그 자리에 서게 되니, 아버지의 침묵이 이해되었다. 그는 자신과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과의 대화가 아니라, 자신과의 대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무게와 사연을, 그는 낚싯대 끝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자리에 내가 앉아, 같은 방식으로 내 삶을 되짚고 있다. 아버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겹쳐지고, 그 겹침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위로받는다. 햇살이 강 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겨울답지 않게 따스한 빛이었다. 얼어붙은 갈대 사이로 노란 빛이 퍼지고, 강물 위에는 희미한 물안개가 일기 시작했다. 그 안개를 보며, 나는 마음속의 오래된 상처들을 떠올렸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 사라진 친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 그 모든 것들이 안개처럼 내 안에서 피어올랐고, 나는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일이지만, 내게는 마음의 안개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숱한 감정과 기억이 혼재된 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나 자신. 낚시를 하며 나는 그 자신을 조금씩 꺼내 본다. 미움도, 후회도, 그리움도, 다 내 일부였다는 걸 인정하기 위해. 어느덧 해가 중천에 올랐다. 나는 낚시를 접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오늘도 손에 쥔 고기는 없었지만, 가슴에 남은 감정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그 무심함 덕분에 나는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쁜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 삶의 소음 속에서는 사라져버리는 그 조용한 울림.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낚시를 하며 나는 진심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 이 적막한 강가에서 나는 진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낚시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얼어붙은 강물 아래에서도 물고기는 숨을 쉬고, 강은 흐른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얼어붙은 것처럼 보여도, 그 밑에선 여전히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믿는다. 오늘은 비록 낚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내 삶의 어떤 진실이 찌처럼 움직이며, 내 손에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