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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자리(흐르는 강물처럼 남겨지는 것들)

by 남반장 202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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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이 천천히 흘러간다. 그 흐름은 마치 시간이 지나가는 방식과도 같아서,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어느새 하늘의 표정이 바뀌고, 빛의 결이 달라지며, 풍경은 조금씩 자기 자리를 바꾼다. 나는 그 느린 변화의 속도를 좋아한다.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너무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에 지쳐 있을 때, 구름은 내게 삶의 다른 리듬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나는 자주 강가를 찾는다. 낚시대 하나를 들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오늘따라 강물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유난히 선명하다. 흰빛을 품은 채 멀어지는 그 조용한 무리 속에서 나는 오래전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첫 낚시를 함께 했던 친구, 강가에서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밤을 새우던 시절, 그때는 세상이 아직 나를 닮기 전이었고, 나는 나를 의심하기 전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한 마리의 붕어도 잡지 못했지만 서로의 침묵 안에서 위로를 배웠다. 낚시라는 것이 결국 물고기를 잡는 일이 아니라, 말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멀리-보이는-산-호수에-비친-산

 

강물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결코 같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처럼 보이는 날들 속에서도, 결국은 모든 것이 다르고, 모든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흐름 속에 사라지는 것들을 잡아두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그 자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 그때의 공기, 물결, 소리, 온도를 마음에 남기는 일뿐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낚시를 한다는 것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연습이 아닐까. 미끼를 물었다가 다시 놓아주는 순간, 손끝에서 벗어나는 붕어의 미끄러운 감촉, 입질이 오지 않는 긴 시간 끝에 깨닫게 되는 포기와 받아들임. 그것은 마치 사랑처럼, 삶처럼, 꼭 쥐고 있어도 언젠가는 흘러가게 되는 것들에 대한 체념이자 이해다. 그러니 이 기다림은 단지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고기를 낚는다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시간이 내 안에 남기는 것들이다.

 

구름은 오늘도 떠돈다.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를 강물 위에만 살짝 얹은 채 이내 흘러간다. 나는 그런 구름의 자세를 부러워한다. 붙잡히지 않고도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 의미 없이 머무르지 않고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 사람들은 가끔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싶어 한다. 말과 기록과 사진과 이름과 시간과 눈물과 미련, 그런 것들로 가득 찬 채 우리는 너무 무거워진다. 그러나 낚시터에서의 나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남기지 않는 법을 배운다. 붕어가 입질을 해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찌가 흔들릴 뿐, 나는 그냥 그 움직임만을 감상할 수 있다. 물가에 앉아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정리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의 저녁이 오면, 나는 낚싯대를 거두고 가방을 메고, 다시 구름처럼 돌아간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러나 아주 많은 것을 얻은 마음으로.

 

사람들은 왜 낚시를 하느냐고 묻는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고, 물고기 하나 없는 날은 허무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낚시대를 드리우며 시를 쓴다. 찌가 흔들릴 때마다 한 줄씩 시가 완성된다. 나는 그 찌의 움직임에 따라 문장을 정리하고, 내 안의 말들을 가다듬는다. 입질이 없는 날은 침묵이라는 시가 쓰인다. 물안개가 낀 날은 흐린 기억의 시가, 비 오는 날은 닿지 않은 사랑의 시가 쓰인다. 나는 그 시들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것들은 내 안에 가장 깊숙이 박힌 문장들이다. 그러니 낚시는 물고기보다도 깊은 곳에 닿아 있는 행위다. 나를 향해 던져진 바늘, 마음의 가장 어두운 심연에 머무는 고요. 그곳에 잠시나마 닿는 감각이 삶을 다시 이어주는 것이다.

 

오늘도 강가에서 나는 작은 불을 켠다. 해가 지고 바람이 서늘해지면, 텐트 옆에서 나무 몇 조각을 모아 불씨를 붙인다. 그리고 그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젊을 때는 몰랐던 주름이 생겼고, 시간의 무게만큼 눈빛은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그 불빛 속에서 나는 아직도 처음 낚시를 시작하던 그 마음을 기억할 수 있다. 혼자였고, 외로웠고, 그래서 조용히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강가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강물은 나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처럼 옆에 흘렀다.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지 못한 마음을 그 흐름에 실어 보내고, 다시 빈 마음으로 돌아오던 수많은 날들. 그 모든 시간이 내 안에 쌓여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나는 그 풍경을 사랑한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내 삶의 가장 깊은 문장으로 남는다. 구름은 여전히 떠다닌다. 그리고 나는 그 아래, 강가에서 다시 찌를 띄운다. 어쩌면 아무것도 낚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된 마음 하나쯤은 건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걸로 충분하다. 구름이 머문 자리에는 언제나 감정의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 여운을 모아 오늘이라는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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