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수천 년을 그 자리에 있어도 돌은 그저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며 침묵한다. 나는 어느 조용한 저수지의 가장 구석, 돌무더기와 갈대가 뒤섞인 물가에서 그 침묵과 마주 앉는다. 바람은 잔잔하고, 물결은 거의 없다. 수면 위에 낙엽 하나 떠 있다가 천천히 회전하며 흘러가고, 나는 그마저도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만큼 고요한 시간 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곳은 흐르지 않는 시간의 웅덩이 같았다. 도시에서 휘몰아치던 시계 바늘의 속도는 여기서 무력해진다. 휴대폰은 전파를 놓고 말았고, 사람 소리도 차 소리도 없다. 붕어 한 마리, 그것조차 이 고요를 깨뜨리기엔 부족할 만큼의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고요 속에서 묵직한 위로를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침묵이 가진 감정의 농도 때문일 것이다. 떠드는 소리나 웃음보다도, 어떤 말보다 더 진한 의미가 이 정적 속에 배어 있다. 나는 낚싯대를 뻗는다. 찌는 작고 가볍지만, 내 마음은 그 끝에 온몸을 실은 듯 무겁게 내려앉는다. 돌 틈 사이, 잔잔한 흐름 속을 상상하며 찌를 바라본다. 어쩌면 지금 이 낚시 자체가 돌과 같은 무언가를 마주하려는 나만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 쉽게 반응하지 않는 것, 그러나 결코 죽은 것이 아닌 것. 나에게 낚시는 바로 그런 대상과의 대화이자 시선의 호흡이다.
예전에도 이런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다. 인생의 고비마다 무언가 선택을 앞두었을 때, 나는 꼭 이처럼 고요한 물가를 찾곤 했다. 그리고 침묵하는 것들 곁에 앉아 나의 내면을 훔쳐보았다. 수많은 갈림길, 선택, 그로 인한 기쁨과 후회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무기력한 감정들이 내 안에 쌓일 때면, 나는 도시의 속도를 탈출하듯 낚시터로 향했다. 거기엔 사람의 말보다 낫고, 책의 문장보다 정직한 세계가 있었다. 찌가 흔들리지 않는 시간, 바람 한 점 없는 시간, 그 조용한 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때로는 이런 고요함조차 견디기 어려운 날도 있다. 너무 조용해서 스스로의 생각들이 소음을 내고, 기억들이 덜커덕거리며 고개를 쳐든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나갔던 둑방의 기억, 그가 찌를 보며 말없이 피우던 담배 연기,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주던 그 온기. 이제 그 온기를 느끼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냄새는 여전히 내 뇌리에 선명하다. 말없이 주고받던 시간들, 그것은 돌처럼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시간은 흐르지만, 어떤 감정은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물속 돌 틈에 자리 잡은 붕어처럼, 세상의 흐름과는 다른 리듬으로 존재한다. 그 리듬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제서야 그 리듬의 속도를 조금 알 것 같다. 바쁘게 살며 놓쳤던 것들, 너무 빠르게 잊어버렸던 감정들, 모두 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다. 낚시는 그 리듬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행위다.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침묵, 물소리와 바람의 합창, 그리고 그 틈 사이에 불쑥 떠오르는 붕어의 입질. 찌 하나가 옆으로 밀려나듯 움직일 때,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이 물결을 일으킨다. 그것은 단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 하나를 잡아 끌어올리는 것이다. 오늘처럼 침묵이 짙은 날, 그 낚시는 더욱 진하다. 시간은 멈춘 듯하지만, 감정은 흐른다.
나는 찌 하나를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돌 틈 사이에 가만히 몸을 숨긴 붕어 한 마리를 상상해본다. 차가운 물살 속에서도 온기를 품고 살아가는 그 생명. 누군가에겐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그 안엔 거대한 우주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세상 속에서는 이름도 없는 돌 틈의 생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엔 기억과 감정, 사랑과 상처가 가득한 세계가 있다. 그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찌가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낚는 날. 내 감정의 깊이를 다시 바라보는 날.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모든 질문들이 찌의 끝에서 반짝인다. 돌은 침묵하지만, 나는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낚시란 그런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가장 진한 대화가 오가는 시간. 붕어 한 마리가 아닌, 나 자신 하나를 낚아 올리는 행위. 그리고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의식.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나는 낚싯대를 거두었다. 오늘 단 한 번의 입질도 없었지만, 내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일렁였다. 돌 틈에 숨어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고, 흐르지 않던 감정 하나가 흘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하루는 고요했지만, 내면은 가장 분주한 날이었다. 그래서 낚시는 멈추지 않는다. 내일도 나는 이 침묵을 찾아 다시 걸어올 것이다. 돌은 여전히 말이 없겠지만, 그 침묵 너머로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건져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시간을 다시 짜맞추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낚시는, 그렇게 내 삶을 조금씩 낚아 올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