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새벽, 아직 하늘도 빛을 알지 못한 채 잠든 시각, 나는 오래된 낚싯대를 챙겨 물가로 향했다. 그날은 유난히 안개가 짙었다. 호수 전체를 감싼 물안개는 세상의 모든 경계선을 지워버린 듯, 물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경계 없는 회색 풍경 안에서 어느 한 조각 연기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찌 하나를 던지고 자리를 잡은 순간, 불현듯 떠오른 건 오래전 어머니와 함께했던 강가의 기억이었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없는 어느 시절,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논일을 마치고 남은 저녁 시간엔 낚싯대를 들고 냇가에 나가곤 하셨다. 나는 그 옆에서 부스스 졸다 깨어, 간간이 움직이는 찌를 보며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무엇을 생각하며 물가에 앉아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손끝의 감각으로 생계를 건 낚시를 하고 계셨다는 사실조차 어린 나는 깨닫지 못하고, 그 곁에서 잠이 들곤 했었다.
오늘, 이 물안개 속에서 나는 낚시를 하고 있는지, 혹은 잃어버린 기억을 끌어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찌는 조용히 물 위에 떠 있었고, 그 너머 어딘가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내 어깨를 가만히 감싸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생전 좋아했던 검정 고무신과 보라색 목수건, 그리고 늘 등에 메고 다녔던 배낭이 문득 그려졌다. 찬 바람이 살갗을 스쳤고, 그 바람에 나는 오래전 냇가의 냄새를 다시 맡은 듯했다. 물비린내와 흙냄새, 그리고 어머니의 살냄새가 섞인 듯한 그 독특한 향기. 세상 어떤 향수도 흉내 낼 수 없는 냄새가 내 기억 속 어딘가를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삶이란 결국 얼마나 자주 자신을 되돌아보았는가의 누적일지도 모른다. 낚시를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많이 마주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간은 유독 특별했다. 그 시절, 어머니가 왜 그렇게 낚시에 집착했는지, 왜 찌 하나만 바라보며 밤을 새울 수 있었는지, 왜 그 조용한 냇가가 그녀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는지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오지만, 가난과 외로움, 책임과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머니의 삶엔 유난히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낚시는, 그녀가 잠시나마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물이 유난히 고요한 날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수면은 거울처럼 정적이었고, 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어느새 중년을 넘은 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닮은 이마와 눈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투를 닮아가고 있었다. 인간은 결국 기억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말이 있다.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고, 때로는 현실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낚시대를 잡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마치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이 컸구나, 이제 너도 이런 데서 사는 게 익숙해졌구나."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그 고개 끄덕임에 담겨 있었고, 눈시울은 자연스럽게 젖어들었다.
기억은 물과도 같다. 손에 담으려 하면 흘러버리고, 너무 꽉 쥐면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조용히 바라보면, 그 수면 아래 숨겨진 진실들이 비춰진다. 어머니의 손, 어머니의 땀, 어머니의 목소리. 그것들은 내가 아무리 무심한 척 살아가도, 결국 어떤 안개 낀 새벽의 낚시터에서 다시 떠오르게 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물비린내 가득한 안개 속에서 나만의 추억을,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름의 기억을 낚아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낚시가 지루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낚시는 가장 진한 대화의 시간이며, 잊혀졌던 풍경과 다시 만나는 길이다.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채 해가 중천에 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날보다 풍성한 수확을 안고 자리를 정리했다. 물안개 속 어머니의 얼굴을 본 날, 그것은 고기보다 값진 하루였다. 붕어 한 마리보다 더 귀중한, 기억의 조각 하나를 내 가슴에 담아 돌아가는 길. 나를 낳고, 키우고, 지켜주었던 그 시간을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차례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기억 또한 누군가의 물안개 속에서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조용히 되뇌며 걸음을 옮겼다. 이 낚시는 끝이 없고, 그 기억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내일도 다시, 물안개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어머니를, 그 시절을, 그리고 나 자신을 낚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