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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쓸려가는 찌 하나(흔들리는 마음의 풍경)

by 남반장 2025. 5. 4.

낚시터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람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이 갈대밭을 휘젓고, 물 위에 일렁이는 파문을 만들고, 찌 하나를 흔들고 있었다. 찌는 제 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흔들렸다. 마치 자리를 잡은 듯해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처럼. 나는 천천히 낚싯대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바람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고, 그 쓸쓸함이 내 속을 훑는 기분이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풍경인데, 오늘은 왜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걸까.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먼저 멀어진 걸까. 찌는 물결을 따라 흔들리고, 나는 그 찌를 바라보며 내 마음의 흔들림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바람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의지이고, 나는 그 앞에서 고요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찌가 흔들리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 없듯이, 내 안에서 요동치는 감정도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다. 오늘따라 찌의 움직임이 유난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억지로 버티는 듯한 몸짓, 다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자세, 그러다 다시 흔들리는 반복.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문득 오래전 한 친구를 떠올렸다. 함께 낚시를 즐겼던 사람이었다. 그는 바람을 무척 좋아했다. 바람이 불어야 찌가 더 예쁘게 흔들린다며, 그것마저도 낚시의 일부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종종 같은 자리에 앉아 찌 하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눴다. 소리 없이도 통했던 그 시절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는 이제 낚시를 하지 않는다. 삶이 바빠졌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찌를 떠올릴 것이라고. 찌는 부표와도 같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고, 떠 있지만 깊이와 연결된. 그 모습이 어쩐지 나를 닮았고, 그를 닮았고, 우리 모두를 닮았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의 말을 기억한다. 바람은 마음의 방향을 알려준다고. 어쩌면 찌는 단지 고기의 입질만을 기다리는 도구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인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만큼 살아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 바람이 더 거세졌다. 갈대는 거의 눕다시피 흔들리고, 물결은 더 자잘하게 부서지며 반짝였다. 찌는 중심을 잃은 듯 좌우로 기울었다. 나는 낚싯대를 고쳐 잡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흔들리는 날에는 아무것도 낚지 못해도 괜찮다고. 오늘은 물고기가 아니라, 이 바람과 찌의 몸짓을 보러 온 날이라고. 사람도 그렇다. 어떤 날은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의미가 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그 존재가 이 풍경과 어울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 그것은 수치도 아니고, 약함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라는 이름 아래 주어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나는 그 외로움을 감추지 않기로 한다. 찌가 흔들리듯, 내 마음도 오늘은 흔들려도 괜찮다. 나는 이 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으로 나를 맡긴다. 흔들리며 내 안의 균열을 알아차리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낚시는 그렇게 나를 투명하게 만든다. 감추려던 것들이 물 위에 떠오르고,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 찌를 통해 말을 건다. 오늘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이다. 그리고 그 침묵을 지켜주는 바람이다.

해가 기울며 찌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바람은 여전했지만, 나는 그것에 익숙해졌다. 아니, 받아들였다고 해야겠다. 예전에는 바람이 불면 초조했다. 찌가 흔들려 입질을 놓치게 될까 봐, 혹은 고요한 분위기가 깨질까 봐. 그러나 지금은 바람마저도 찌의 일부가 되고, 찌마저도 나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이 물가에 앉아 찌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들이 물결을 따라 흐르고, 찌의 몸짓을 통해 내게 전달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소통일지 모른다. 말보다 깊은 공감, 침묵보다 분명한 메시지. 바람은 여전히 불고, 찌는 여전히 흔들리고, 나는 여전히 그것을 바라본다. 오늘 나는 무엇을 낚았는가. 물고기가 아니더라도, 내 안의 무엇이 분명 낚였다고 느낀다. 그 무엇은 이름 붙일 수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분명 나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고, 조금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날이 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가 마음의 안식이 되는 날.

낚시는 그런 날들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마음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 나는 이제 낚싯대를 접는다. 찌는 아직 물 위에 남아 흔들리고 있다. 마치 작별을 아쉬워하는 듯. 나는 그 찌를 천천히 끌어올린다. 흔들림이 멈추고, 고요함이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바람은 여전히 내 등을 떠민다. 내가 흔들리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도 이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찌 하나에 나를 걸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