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면 세상은 다른 얼굴을 꺼내어 보여준다. 낮의 소란은 사라지고, 어둠은 세상을 부드럽게 감싼다. 그 고요 속으로 나는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간다. 낚시대를 챙기고, 작은 가방 하나에 필요한 것들을 넣는다. 그리고 붕어와 약속한 그 조용한 밤으로 향한다. 저수지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창밖으로 스치는 나무 그림자들, 살짝 열린 창틈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밤공기, 그 모든 것들이 ‘이제 곧 만나게 될 손맛’을 예고하는 듯하다.
도착한 저수지는 이미 어둠에 깊숙이 잠겨 있다. 간간히 울려 퍼지는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들의 합창. 헤드랜턴 불빛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조심스레 자리를 잡는다. 소리 하나에도 붕어는 경계심을 품기에, 이곳에선 나조차 숨을 죽이며 세상의 일부가 된다. 낚싯대를 펴고, 조심스럽게 채비를 던진다. 찌가 수면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그 순간, 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야광찌 하나, 물 위에 작은 별이 떠 있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수면, 그 위에 일렁이는 야광빛을 바라보며, 나는 밤낚시가 주는 깊이를 다시 느낀다. 밤은 생각보다 더 천천히 흐른다. 낮에는 급하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밤이 되면 마치 오랫동안 멈춰 있는 것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찌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긴다. 삶에 대한 고민도, 지나간 추억들도, 이 조용한 밤 속에서는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그러던 중, 찌가 아주 조금, 아주 섬세하게 움직인다. 마치 붕어가 물속 어딘가에서 조심스레 채비를 건드리는 듯하다. 숨을 멈춘다.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긴장이 감돈다. 그리고... 천천히 찌가 옆으로 끌려간다. 한 박자 늦춰, 침착하게 낚싯대를 든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생명의 떨림. 바로 이 순간. 밤낚시를 떠나는 모든 이유가 이 짧은 떨림에 다 담겨 있다. 챔질. 훅 하고 따라오는 저항감. 낚싯대가 휘어지고, 줄이 팽팽해진다.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보라. 온몸으로 전해지는 힘찬 손맛. 밤이라는 고요한 무대 위에서, 나와 붕어가 만들어내는 유일한 움직임이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히 붕어를 끌어올린다. 야광등 아래, 물을 머금은 붕어는 보석처럼 빛난다. 황금빛 비늘, 단단한 지느러미,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의 숨결. 손바닥 위에서 꿈틀대는 작은 생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살림망에 옮긴다. 물속으로 들어간 붕어가 힘차게 퍼덕이는 소리가 밤을 더 깊게 만든다.
밤낚시는 기다림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별빛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바쁜 일상 속에선 잊고 지냈던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텀벙, 멀리서 들리는 누군가의 챔질 소리. 같은 밤, 같은 고요 속에서 누군가도 손맛을 만났구나. 이름 모를 동료와 함께하는 연대감 같은 것이 살며시 밀려온다. 가끔은 아무런 입질 없이 밤이 깊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담요를 덮고 잠시 누워 별을 본다. 별은 수도 없이 많고, 하늘은 터질 듯 깊다. 그 아래에서 나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 작은 존재가 한밤중, 저수지 한가운데서 붕어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가슴 벅차다. 붕어 한 마리, 별 하나, 물결 하나가 다르게 다가오는 이 밤.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문득 사랑하게 된다. 새벽이 오기 전, 어둠은 가장 짙어진다. 바람이 더 서늘해지고, 찌의 야광빛도 더욱 선명해진다. 이때 문득 찾아오는 마지막 한 번의 입질.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나는 다시 자세를 고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찌가 흔들린다. 살짝, 그리고 과감하게. 이번에도 놓치지 않는다. 하루의 끝자락, 밤의 끝자락에서 붕어와 나눈 마지막 인사. 새벽빛이 수면을 물들인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세상이 다시 깨어난다. 밤낚시는 그렇게 조용히 막을 내린다. 장비를 정리하고, 낚싯대를 접으며, 마지막으로 저수지를 한 번 돌아본다. 밤새 머물렀던 물가, 함께 숨 쉬었던 바람,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 별빛. 모든 것이 이 밤을 채워주었다. 차에 올라 엔진을 걸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약속을 해본다. 또 다른 밤, 또 다른 고요를 찾아 다시 오겠노라고. 그리고 그때도 오늘처럼, 조용히, 천천히, 깊이 손맛을 만나겠노라고. 밤은 그렇게, 매번 새로운 추억을 남긴다. 밤낚시는 단순히 물고기를 낚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낚는 일이다. 잊고 살던 마음의 소리를, 한밤의 고요 속에서 다시 찾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밤낚시를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