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쏟아졌다. 지붕을 두드리던 물소리가 잠을 덜컥 깨워버릴 정도로 무심하게 이어졌고, 창문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들은 마치 쏟아지는 기억처럼, 지워지지 않고 스며들었다. 누운 채로 천장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잠이 들지 않았고, 그 어떤 감정도 달래지지 않았다. 오래된 사진첩처럼, 한 장 한 장 넘기며 조용히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밤, 나는 문득 낚시가 생각났다. 그것은 도피였고, 회피였으며 동시에 치유였다. 누군가는 책을 펴고, 누군가는 기타를 들지만, 나는 낚싯대를 고른다. 이유를 말하라면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끝자락 어딘가에 내가 필요로 했던 시간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해왔다. 비가 그치고 난 새벽,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길은 젖어 있었고, 바람은 젖은 나뭇잎을 흔들었다. 나뭇가지 끝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질 때, 그 고요한 소리는 마치 내 안에 고여 있던 말 못 할 감정이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보통 비가 그친 뒤의 맑음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사이, 비와 맑음 사이에 걸친 어스름을 사랑한다. 회색빛 하늘이 떠오르고, 물안개가 느릿하게 기지개를 켜듯 일어서는 그 순간, 마음도 조용히 깨어난다. 오늘 낚시터는 남쪽 언덕을 돌아 들어가는 작은 저수지였다. 새벽에 그곳을 찾는 이는 드물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사람 없는 시간대를 택했다. 말이 없는 풍경,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나무들,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 그런 것이 필요했다. 세상에 짓눌린 말들과,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너무 많았던 날들이었다. 낚싯대를 드리우며 나는 문득, 왜 이토록 정적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늘 누군가의 감정을 내 안에서 미리 연습하고, 정리하고, 나보다 그들의 기분을 먼저 다독이게 된 것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젠 다 설명해야 이해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조용한 저수지만은 여전히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어떤 검열도 받지 않았다. 세상에 가끔은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묻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낚시란 그런 것이다.
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조급하지 않았다. 오늘 낚시가 나를 위해 허락된 시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낚시는 입질이 없어도 되는 유일한 기다림이다. 다른 기다림은 대부분 약속된 결과를 필요로 하지만, 이 기다림은 과정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 물속의 고기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내 안의 감정들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기억이라는 것도 꼭 그런 물속의 고기들 같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조용히 헤엄치며 언젠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한때는 내게 가장 가까웠고, 지금은 이름조차 부르기 어려운 사람. 우리는 언젠가 낚시를 함께 했다. 그 사람은 물고기를 잘 잡지 못했지만, 늘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고기 말고 마음을 낚았네.” 그 말이 왜 그리 좋았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이, 잡지 못함을 정당화하는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심은 때론 말보다 침묵 속에 묻힌다. 나는 그 사람의 웃음을 생각하며, 물결 위로 시선을 던졌다. 찌는 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원을 그렸다. 마치 내 마음속을 떠다니는 미련 같았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금빛을 머금었고, 그 빛은 물 위로 떨어져 찬란한 무늬를 만들었다. 자연은 설명하지 않지만 위로를 준다. 그것이 내가 낚시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이 고요 속에서는 말없이 많은 것이 회복된다. 이른 새벽, 아직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시간에, 나는 낚싯대를 손에 쥔 채 오래된 내면을 들여다본다. 내가 몰랐던 나, 잊고 있던 기억, 감추어둔 상처들. 낚시터는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의 거울이 된다. 낚시는 혼자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안에 셀 수 없이 많은 얼굴들이 함께한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많은 이들과 마주했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찌가 스르르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손에 힘을 주어 낚싯대를 들자, 낚싯줄 끝에서 느껴지는 생의 움직임. 그것은 물고기의 저항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심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요히 감아올렸고, 빗물에 젖은 손이 낚싯줄을 따라 떨렸다. 물 위로 떠오른 그 작은 생명체는 금빛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놓아주었다. 오늘 나는 고기를 낚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마음을 낚았고, 시간을 낚았으며, 무엇보다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낚아 올렸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고, 세상은 다시금 태어나는 중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낚싯대는 여전히 젖어 있었고, 내 마음도 어쩌면 그와 같았다. 그러나 그 젖음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것. 젖었기 때문에 더 선명한 무늬가 남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게 하나의 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낚시를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지나가고, 햇살이 퍼지고, 다시 일상이 돌아오겠지만, 이 고요한 새벽의 기억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을 것이다. 그건 그리움이기도 하고, 치유이기도 하며, 아주 작은 희망이기도 하다. 낚싯대를 정리하며 나는 생각했다. 비가 오고, 다시 맑아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고. 그리고 다시 또, 고요한 물가에 앉을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낚시는 그렇게 나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