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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안개의 언어, 물안개 속 낚시터에서 들은 말 없는 속삭임

by 남반장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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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침묵의 다른 얼굴이다. 특히 그것이 밤의 수면 위를 덮을 때, 세상은 마치 존재를 숨긴 채 어딘가로 가만히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런 밤을 좋아했다. 불빛이 닿지 않는 작은 저수지나 강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외진 둠벙 같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 나를 던져두고 있으면, 어느새 세상이 나를 놓아준 듯한 고요가 찾아왔다. 낚시는 그 밤에 더없이 어울리는 일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것 같은 그 정적 속에서, 그러나 가장 많은 말이 오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물안개는 말이 없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인가 들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마치 잊고 있던 이름을 누군가 다시 불러주는 소리 같았고, 아주 오래전에 했던 약속을 되새기는 숨결 같았다.

나는 그 밤, 작은 강변의 갈대숲 사이로 조용히 낚싯대를 세우고 찌 하나를 띄웠다. 바람이 없었다. 세상은 정지된 듯했고, 오직 내 숨소리와 가끔씩 옷깃을 스치는 갈대의 마찰음만이 존재의 증명이었다. 물안개는 서서히 퍼지더니 이내 주변을 모두 삼켜버렸다. 수면 위의 찌는 어느새 안개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그제야 나는 내가 진정 혼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관계로부터 잠시 유예된 시간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었다. 세상이 안개로 덮이자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감정들도 슬며시 베일을 두른 듯 부드러워졌다. 평소에는 뾰족했던 상념들이 안개 속에서는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그 밤,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안개는 시야를 가리지만 감각을 열어준다. 눈으로 보지 못하니 귀로 듣게 되고, 손끝으로 느끼게 되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낚싯대 끝이 보이지 않으니 나는 물소리에 집중하게 되었고, 찌의 움직임 대신 수면의 미세한 떨림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자연과 일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분명히 무엇인가를 듣고 있었다. 물속 어딘가에서 붕어 한 마리가 살그머니 헤엄치는 소리, 그 지느러미가 수초를 스치는 감촉, 그것을 느끼며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안개 속 낚시는 기다림조차도 희미한 것이 된다.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마저 흐려지니 기다림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낚시라는 행위는 존재를 의식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나는 그 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평소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애쓰며 살아간다는 것. 너무 선명하게 모든 것을 보고자 하다 보니,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안개는 우리에게 때때로 필요하다는 것. 흐릿하게 보여야만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들이 있고, 가려져야만 더욱 분명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 낚시는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자주 안겨주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상하게 되고, 상상하기에 감정이 피어나고, 감정이 피어나기에 기억이 떠오르고, 기억이 떠오르기에 삶은 다시 이어진다. 물안개 속 낚시는 그래서 내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고, 나 역시 누구를 보지 않는 시간. 그러나 그 안에서는 가장 진실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새벽 낚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외할아버지는 늘 이른 새벽, 마을 뒷산을 돌아 흐르던 개울가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던 하늘 아래, 흰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발밑에서는 얼어붙은 풀잎이 뚝뚝 부러졌다. 외할아버지는 말이 적은 분이었고, 낚시를 하면서도 거의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의 옆에 앉아 있으면 이유 없이 안심이 되었고, 그가 낚싯대를 던지는 순간의 조용한 손동작 속에서 무언의 가르침을 느꼈다. 그는 낚시보다 기다림을 중시했고, 고기를 낚는 것보다 물가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나도 그를 닮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낚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밤, 그런 안개의 시간 속에서 나는 그와 다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곤 한다. 말은 없지만, 마음은 흐른다.

안개는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준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마치 사랑처럼, 말은 없어도 마음은 흐르고, 흔적은 남는다. 그날 밤, 낚시는 결국 한 마리의 붕어도 안겨주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사랑도 그렇고, 기억도 그렇고, 슬픔도, 위로도 그렇다. 찌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물 위에 있었고, 나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때때로 삶에서 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런 존재의 실감인지도 모른다. 안개 속에서조차 뚜렷이 느껴지는 어떤 감정, 그것만으로 충분한 밤이 있다.

해가 뜨기 전, 안개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 감춰져 있던 찌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저 멀리 갈대숲도 다시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안개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불안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고요하고 단단한 평화였다. 나는 그 평화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낚싯대를 천천히 거두며 다짐했다. 오늘이라는 시간도, 이 안개의 감각도, 이 밤의 조용한 속삭임도 잊지 않겠다고. 그것은 물안개 속에서 들은 말 없는 언어였고, 나 혼자만의 것이었으며,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고요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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