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의 강은 묘하게 정적이면서도 살아 있다. 물살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천 갈래의 속삭임이 숨어 있다. 밤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더 오래도록 여물게 만들고, 낚시는 그 밤 속에서 사색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가 된다. 내가 강을 찾는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젊을 적에는 해 뜨기 전 아침이 좋았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고, 낚싯대를 펼치면 내 앞의 하루가 정갈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가 진 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사라진 뒤의 시간, 그 조용한 밤의 시간이 더 좋아졌다. 아무도 없는 강변에 홀로 앉아 찌를 바라보다 보면, 세월의 그림자가 내 어깨에 앉아 나를 다독이는 것 같다. 말이 필요 없는 동행. 그렇게 나는 밤의 강가에서 물소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어릴 적 강은 두려움이었다.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수심과 끝없이 들리는 물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전설처럼 들리던 실종의 이야기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미지의 세계였다. 낚시대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 걸었고, 그 발자국마다 묻어난 묵직한 삶의 냄새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강 앞에서 말을 아꼈다. 강에서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 법이라며, 그건 예의라고 했다. 나는 그 예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침묵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 침묵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내 곁에 앉아도 나는 말이 없다. 그저 물소리를 들려주려 한다. 물소리는 진실만을 말하니까. 물소리는 거짓말을 모른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니 밤의 낚시는 말 없는 동행을 위한 시간이다. 나를 따라 흐르고, 나를 지나치고, 그러나 나를 잊지 않는 물과의 동행.
낚시대를 드리운다는 건 고요에 닻을 내리는 일이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속도를 높이며 살아가지만, 나는 찌를 통해 그 속도를 늦춘다. 물고기의 입질은 어떤 날엔 감정처럼 민감하고, 또 어떤 날엔 긴 시간의 침묵 끝에 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그 기다림은 단지 고기를 낚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안의 조각들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잊고 있던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문득 사라진 말들을 다시 마음속에 꺼내본다. 어느 날 밤에는 어린 시절 친구가 생각났고, 어느 날에는 이별한 연인의 편지 한 장이 떠올랐다. 모두 물가에 흘려보낸 기억들이지만, 물은 그것들을 다시 내게 데려다 준다. 물은 기억을 품는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강가를 찾는다. 과거와의 재회, 기억과의 화해를 위해.
시간이 흐르며 나도 모르게 늙어간다. 손등의 살이 얇아지고, 허리가 자주 굽고, 먼 곳을 오래 응시하면 눈이 시리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가장 잘 받아들이게 해주는 것이 낚시다. 계절이 바뀌고, 물의 색이 달라지고, 고기의 습성이 변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내가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기게 된다. 낚시는 나를 부드럽게 늙게 만든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시려도 강가에 앉으면 마음은 다시 젊어진다. 찌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이 삶이 아직 살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찌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엔 여전히 어떤 희망이 흐르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낚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버틸 힘, 내일도 이 강가를 찾을 이유, 여전히 가슴 깊이 남아 있는 그리움 하나. 모두 물 위에서 걸려오는 선물이다.
낚시는 가르침이다. 자연은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우리는 저절로 배운다. 오늘 물이 맑다고 어제처럼 낚을 수는 없다는 걸, 입질이 없다 하여 시간이 헛된 건 아니라는 걸, 찌가 사라져도 그건 낚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낚시에서 가장 큰 수확은 ‘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많은 밤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무언가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밤하늘의 별빛, 강물 위를 스치는 바람, 찌를 비추던 달빛,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알 수 있는 한 줄기 감정의 흐름. 그것이 진짜 수확이다. 그러니 밤의 낚시는 자기 자신을 수확하는 시간이다. 혼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되, 그 고요함 속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그 과정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
낚시는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곁에 사람이 없을 뿐, 그 시간은 언제나 세상의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 풀벌레 소리, 물새의 울음,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나를 외롭게 두지 않는다.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강가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이 되며 동시에 이 세상의 작은 일부가 된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체감이다. 물고기 한 마리가 찌를 물고, 그 진동이 내 손끝으로 전해질 때, 나는 그 짧은 연결을 통해 무언가 거대한 순환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긴 울림을 남기는지 나는 안다. 그러니 이 밤도 나는 낚싯대를 드리운다. 찌는 물 위에 조용히 떠 있고, 마음은 그 찌의 끝에서 느릿하게 흔들린다.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깊어지면 물소리는 더욱 또렷해진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어쩌면 내가 듣는 것은 물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의 울림일지도 모른다. 지나온 인생의 부딪힘, 부서짐, 그리고 그 모든 끝에 남은 조용한 수용. 강은 나에게 묻지 않는다. 다만 그대로 흘러갈 뿐. 그래서 나는 물에게 묻는다. 내 마음의 조각들을 다 버릴 수 있을까. 상처 난 기억들도 함께 흘러보낼 수 있을까. 물은 대답 대신 더 깊은 고요로 나를 감싼다. 그리고 나는 안다. 어떤 대답은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얻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이 말 없는 밤의 동행을 계속해나간다. 물과 함께 늙어가고, 물소리와 함께 마음을 씻는다. 언젠가 내가 이 강을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 밤의 물소리는 내 기억 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