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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 다음날 – 붕어 포인트를 읽는 법

by 남반장 2025. 4. 30.

봄비는 낚시꾼에게 특별한 신호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저수지가 깨어나고, 봄 햇살 속에서 점점 생기를 띠던 수면 위로 촉촉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자연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린다. 특히, 봄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을. 비로 인해 변한 저수지의 기운, 거기에는 평소와는 다른, 조용하지만 강력한 붕어들의 움직임이 숨어있다. 봄비는 단순히 물을 적시는 것이 아니다. 저수지의 수온을 바꾸고, 수초의 생명력을 깨우고, 수면 아래 고요히 웅크린 붕어들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대담해진다. 조금 더 거칠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유료-낚시터-사진

 

새벽, 비가 그친 저수지로 향한다. 길가에 작은 웅덩이가 생기고, 풀잎에는 여전히 빗물이 맺혀 있다. 수면은 아직도 촉촉하다. 바람은 가볍게, 물결을 만들지도 못한 채 스쳐간다. 나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핀다. 붕어는 비가 지난 후, 어디에 모일까. 포인트를 읽어내는 것은 경험과 감각,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에 달려 있다. 우선, 수온을 생각한다. 봄비는 대체로 찬 기운을 품고 있다. 표층 수온은 잠깐 식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저수지의 온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얕은 수심이다. 봄비가 온 후, 얕은 수심은 빠르게 차가워진다. 따라서 나는 지나치게 얕은 곳보다는 1.5미터에서 2미터 정도의 안정적인 수심을 찾아간다. 물이 탁해진 것도 중요하다. 봄비는 수로를 통해 흙탕물을 밀어 넣는다. 이 탁도는 붕어에게 양날의 검이다. 물이 너무 탁하면 붕어도 경계심을 늦추지만, 지나치게 혼탁하면 붕어 역시 먹이활동을 꺼린다. 따라서 물색이 살짝 흐려진 곳, 물속이 어렴풋이 보일 듯 말 듯한 지점을 고른다. 특히 수로가 유입되는 구간, 또는 비로 인해 약하게 물길이 흐르는 지점을 주목한다. 붕어는 이런 신선한 물과 함께 유입된 플랑크톤, 작은 곤충, 유기물들을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배고프고,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더 과감해진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비 온 다음날 낚시꾼의 진짜 실력이다.

 

자리를 잡고, 채비를 내린다. 비온 뒤, 활성화된 붕어를 노리기 위해 떡밥도 살짝 강하게 조정한다. 평소보다 조금 더 향이 강한 글루텐을 섞고, 입질을 유도하기 위해 찰진 느낌을 살린다. 찌 세팅은 가볍게, 붕어가 조금이라도 이상 신호를 느끼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린다. 비가 쓸고 간 저수지는 평소와는 다르다. 모든 소리가 부드럽고, 모든 움직임이 새롭게 느껴진다. 처음 찌가 떨린다. 살짝, 정말 살짝 스치는 느낌. 붕어가 경계하면서도 탐색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급하지 않게 기다린다. 입질이 이어진다. 찌가 천천히 옆으로 흘렀다가, 살짝 솟구친다. 그 순간, 짧게 챔질한다. 손끝에 느껴지는 탄력. 초봄의 붕어는 힘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생명력은 누구보다 진하다. 한 마리, 그리고 또 한 마리. 붕어는 비로 인해 변한 환경을 빠르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그 변화를 읽고 대응하면 붕어는 기꺼이 응답해준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비로 인해 바뀐 지형, 늘 잠겨 있던 포인트가 드러나거나, 새로 생긴 작은 수로에는 낚시가 불가능할 수 있다. 특히, 비가 강하게 내렸다면 저수지 가장자리는 질척거리기 마련이다. 안전을 위해 항상 발밑을 살피고, 미끄러운 곳에서는 욕심을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붕어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그리고 낚시꾼 또한, 이 변화의 기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봄비는 선물이다. 지루했던 패턴을 깨뜨리고, 붕어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기적이다. 나는 오늘 또 배운다. 자연은 늘 변하고, 붕어는 그 변화를 따라 산다는 것을. 그리고 낚시꾼은 자연을 억지로 바꾸려 하는 대신, 그 흐름에 조용히 몸을 실어야 한다는 것을. 비가 지나간 들판은 더욱 초록빛을 머금고, 저수지는 다시 고요를 되찾는다. 오늘 나는 붕어와 함께, 봄비가 내린 다음날의 저수지를 읽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낚시 이상의 경험이었다. 자연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내려놓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