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앉아 찌를 바라보는 시간은 언제나 사색으로 이어진다. 자연 속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붕어낚시가 단순히 고기를 잡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붕어 한 마리를 만나는 과정은 마치 나 자신을 만나고, 내 안의 고요함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그래서 붕어낚시는 내게 늘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낚싯대를 잡았던 날을 떠올려본다. 그저 누군가의 권유로, 혹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막상 물가에 앉아 찌를 세우고 나서는, 기대했던 흥분이나 성취감보다 이상할 정도로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세상이 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 나는 어느새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일상에서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작은 감정들,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던 고민들이 그 물결처럼 잔잔히 밀려왔다. 찌는 가만히 수면을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찌가 살짝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입질은 없었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붕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때로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붕어낚시는 내게 처음으로 '포기'라는 감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낚시터는 나에게 치열한 자기 대면의 공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찌를 바라보다 보면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자잘한 욕망이나 불안, 두려움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외로움, 분노, 슬픔. 이 모든 감정들이 스스로 드러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붕어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그런 내 감정들을 견디고 통과하는 연습이었다. 입질이 왔다. 찌가 천천히 물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 성급하게 낚싯대를 들어올리는 바람에 헛챘다. 놓쳐버린 붕어를 보며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알게 되었다. 모든 기회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삶에서도 중요한 순간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잘 포착하려면, 평소에 마음을 다스리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어느 날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단 한 번의 입질도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다른 낚시꾼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도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던 저녁, 마침내 찌가 가라앉았다. 조심스럽게 챔질을 하자, 묵직한 힘이 손끝에 전해졌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붕어는 유난히 반짝였고, 나는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내 자신에게 보내는 작은 축하였다.
그 이후로, 붕어낚시는 나에게 인내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주었다. 기다림은 결코 시간의 낭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더욱 깊게 만드는 과정이었고, 결국에는 더 큰 성장을 가져다주는 씨앗이었다. 붕어를 기다리는 동안 나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창한 변화를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작은 깨달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일이었다. 오늘은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았다는 것, 내일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 붕어를 기다리며 나는 나를 알아갔다. 지금도 여전히 낚시터에 앉아 찌를 바라보면, 그 고요한 수면 위로 또 다른 나 자신이 비쳐 보인다. 아직도 서툴고, 아직도 조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나를.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붕어를 기다릴 것이다. 물가의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 길고 느린 기다림이 내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해줄 것임을 믿기 때문에. 붕어낚시는 결국 나에게 물었다. "너는 너 자신과 얼마나 친한가?"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아직은 서툴지만, 매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