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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낚시와 나이 – 세월을 낚는다는 것

by 남반장 2025. 4. 27.

붕어낚시를 시작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간 동네 둠벙에서 처음 낚싯대를 쥐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손끝에 닿는 바람과 물비린내가 생생하다. 그때는 단순했다. 찌가 살짝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작은 붕어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어찌나 자랑스러웠던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손끝에 스며드는 물살의 온도만으로도 오늘 붕어의 활성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아이 같던 그 설렘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붕어를 낚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고기를 낚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붕어 한 마리를 걸어올릴 때마다, 그 속에는 지난 세월의 추억과 지금까지의 삶이 함께 걸려 올라온다. 어린 날의 풋풋함, 청춘의 불안, 그리고 중년의 무게까지. 낚시터에서 조용히 찌를 바라보는 시간은 마치 내 인생의 필름을 되감는 시간 같다. 처음 붕어낚시를 배울 때, 나는 성급했다. 찌가 조금만 흔들려도 덥석 챘고, 입질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슴이 조급했다. 고기도 잦았다. 손맛은 그리웠지만, 진정한 낚시의 맛을 알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찌가 수면 위에서 천천히 오르내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때로는 챔질하지 않고 그냥 바라본다. 기다림 속에 숨겨진 붕어의 심리, 물속의 작은 변화를 읽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붕어낚시터-사진

 

세월은 나를 낚시꾼으로도, 한 인간으로도 단련시켰다. 예전에는 크기와 마릿수에 집착했다. 더 크고, 더 많은 붕어를 낚아야만 '성공한 낚시'라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낚시는 상대가 붕어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물고기를 낚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내 안의 조급함, 탐욕, 그리고 허영을 이겨내는 싸움이라는 것을. 특히 붕어낚시는 이런 깨달음을 더욱 깊게 해주는 낚시다. 붕어는 은둔의 고수다. 조금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면 절대 입질하지 않는다. 긴 시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수면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 고요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물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붕어낚시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낚시터를 찾는 이유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조과를 자랑하기 위해, 혹은 경쟁심에 불타서 낚시를 했다면, 이제는 그냥 자연과 함께 있고 싶어서 낚싯대를 편다. 새벽 강가의 차가운 공기, 수초 사이로 퍼지는 물비린내, 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만들어내는 황금빛 물결. 이 모든 것이 붕어보다 더 귀한 선물이다. 낚시란 결국, 세월을 물가에 풀어놓고 천천히 음미하는 일이다. 물론, 여전히 가끔은 손맛이 간절하다. 찌가 서서히 수면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 본능처럼 챔질을 하고, 굵은 붕어가 휘청이며 버티는 손끝의 중량감을 느낄 때면, 나는 여전히 소년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저도 조급하지 않다. 잡히지 않으면 어떠랴. 오늘 하루를 자연과 함께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중년 이후, 나는 낚시를 통해 '흐름'이라는 것을 배웠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흐름이 있다. 억지로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붕어도 마찬가지다. 입질이 없을 때는 자리를 고집하기보다는 물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다음 포인트로 옮긴다. 인생도 그렇다. 한 곳에 집착하기보다는 때를 기다리고, 흐름을 타야 한다. 붕어낚시는 그런 삶의 철학을 가르쳐줬다.

 

붕어낚시를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은,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성찰이 있고, 인내가 있고, 겸손이 있다. 찌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대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고, 사소한 기쁨에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젊은 낚시꾼들이 와서 물어본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붕어를 더 잘 잡을 수 있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붕어를 잡으려 하지 말고, 붕어를 기다려라. 그리고 네 마음부터 다스려라." 그 말을 스스로도 자주 되새긴다. 붕어는 마음이 급한 사람에게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물 위에 드리운 조용한 기다림 속에, 비로소 진짜 입질이 찾아오는 것이다. 붕어낚시는 나에게 삶의 스승이다. 물가에 앉아 찌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을 다듬는다. 붕어를 낚는다는 것은 결국 세월을 낚는 일이고, 세월을 낚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낚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낚시터로 향한다. 가볍게 접은 낚싯대 하나, 작은 미끼통 하나. 그리고 누구보다 무겁게 가슴에 품은 세월 하나. 찌가 오르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나를 낚는다.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