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서면 나는 늘 작아진다. 붕어 한 마리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는지 알기에,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거친 흐름 속에서 벗어나 겸허히 물을 마주하게 된다. "붕어 낚시는 기다림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생각하게 된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온전한 '수용'에 가깝다고. 물의 흐름, 붕어의 리듬, 그리고 자연의 작은 변덕까지도 품에 안을 줄 알아야만 붕어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늦여름 저녁, 나는 조용히 낚싯대를 세웠다. 바람은 잔잔했고, 수면에는 구름이 비쳐 있었으며, 작은 곤충들이 어둠을 준비하고 있었다. 찌 하나를 바라보며 시간을 녹여내는 동안, 나는 문득 붕어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꼭 삶을 닮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것을 바라며 산다. 성공, 사랑, 인정. 그리고 그 대부분은 기다림 끝에 온다. 그러나 조급해할수록 멀어지고, 욕심낼수록 허탈해진다. 찌를 쳐다보면서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오늘도 조급했는지, 조심스러웠는지, 아니면 아예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붕어 낚시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붕어가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없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배움의 시간임을 알게 된다. 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수면은 정적에 잠긴다. 이 순간, 나는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게 된다. 처음에는 초조하다. "왜 입질이 없을까?", "채비가 문제일까?", "포인트를 잘못 잡았나?" 별의별 의심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묘하게도 그런 생각조차 의미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냥 그 순간을 받아들이게 된다. 붕어가 오든 말든, 자연이 나를 받아들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게 된다. 입질은 예고 없이 온다. 조심스럽게, 때로는 황홀할 만큼 확실하게. 기다림 끝에 오는 그 작은 신호 하나에 온 세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알게 된다. 삶의 기쁨이란 거창한 결과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순간의 진동과 설렘 속에 있다는 것을. 붕어 한 마리가 걸려드는 그 순간,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러나 곧 그 기쁨을 놓아야 한다. 낚아 올린 붕어를 바라보며 감사하고, 다시 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모든 것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임을, 붕어 낚시는 몸으로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종종 붕어 낚시를 '지루한 취미'라고 말한다.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 의아해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간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게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물살의 떨림, 바람의 방향, 햇살의 온기, 물고기의 기척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느끼며 존재하는 것이다.
붕어는 욕심을 내는 이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두르는 이에게 등을 돌린다. 그저 차분히, 겸손히 다가가는 이에게만 가끔 마음을 열어준다. 마치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억지로 다가가면 멀어지고, 조용히 믿어주면 서서히 가까워진다. 붕어를 기다리며 나는 관계의 미묘함도 배운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강제로 얻을 수 없다는 것. 그저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느긋하게 기다리며, 때가 오기를 받아들이는 것. 이따금, 붕어를 낚지 못한 날에도 나는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물가에서 머문 그 시간들, 기다림과 관조의 시간들이 내 마음을 정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손에 쥔 붕어가 없더라도, 가슴 속에는 풍요가 가득 차오른다. 실패와 성공을 넘어서는 어떤 내면의 평화. 낚시터에서 얻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붕어가 아니라, 바로 이 평화일지도 모른다. 붕어 낚시는 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삶을 배우는 방식이다. 세상에 대한 태도를 가다듬는 수련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처럼, 붕어 낚시도 결국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빠른 결과를 원하는 이에게는 지루할 수 있지만, 기다림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깊고 감미로운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가를 찾는다. 찌를 세우고, 조용히 숨을 죽이며, 오직 물과 나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대화를 느낀다. 붕어가 올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기다림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붕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저 깊은 물속에서 오늘도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붕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담긴 메시지는 언제나 명확하다. 기다려라. 초조해하지 마라. 욕심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언젠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