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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낚시와 고요한 반성(나를 마주하는 시간)

by 남반장 2025. 5. 6.

사람은 살아가면서 종종 거울을 본다. 단지 얼굴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마음속 무언가가 일그러졌는지를 들여다보려는 무언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은 너무 빠르고, 거울 앞에 선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낚시터로 간다. 그것도 혼자서, 고요하고 한적한 붕어 낚시터로 간다. 오늘 아침, 나는 그런 이유로 이른 시각부터 집을 나섰다. 한동안 마음속에 낀 안개가 자꾸만 시야를 흐려놓았고, 그것을 걷어내려면 누군가의 말이나 위로보다는 조용히 나를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다. 도시의 끝을 빠져나와 작은 지방도로 접어들고, 다시 인적 드문 마을을 지나 더 외진 곳으로 향했다. 그 길은 마치 마음속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가는 여정 같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낚시터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조용히 내 발걸음을 반겼다. 이른 아침인데도 바람은 제법 서늘했고, 물 안개는 호수 위를 살짝 덮고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꺼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기선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말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기대를 짊어질 이유도 없다. 나는 그저 앉아, 나를 마주하면 된다. 물빛은 흐림과 맑음을 반복했고, 마치 내 마음의 파편 같았다.

낚시터-사진

 

찌를 드리우고 물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건 거짓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이 겹겹이 몰려왔다. 지난달 있었던 사소한 다툼, 처리하지 못한 일, 애써 무시했던 감정, 말하지 못했던 한마디. 나는 그 모든 것을 붕어 낚시터에 풀어놓았다. 물은 묵묵히 그걸 받아주었고, 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떠 있었다. 낚시는 기다림이지만, 그 기다림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언제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나는 곱씹으며 혼자 고개를 떨구었다. 도시의 삶 속에선 쏟아지는 일정과 기대 속에서 감정의 여백이 사라진다. 그래서 붕어 낚시는 나에게 그런 여백을 만들어주는 유일한 시간이다. 쓸모도, 효율도 중요하지 않은, 단지 조용히 있는 것으로 충분한 시간. 붕어는 그렇게 나에게 반성을 가르친다. 그것은 자책과는 다르다.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 물 위에 떠 있는 찌처럼,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일이다.

 

오전 내내 붕어는 입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급하지 않았다. 붕어도 그만의 리듬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아직 나를 다 보지 않았다는 듯, 더 오래 앉아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조금 더 깊이 밀어넣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 역시 낚시를 좋아했지만, 나는 그 취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조용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조용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기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달려온다. 어쩌면 그 시절 아버지도 나처럼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붕어 낚시터 위를 떠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도 당신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물에 말을 던지듯 속으로 반복하며 나는 조금 더 조용해졌다.

 

오후가 되자 드디어 찌가 움직였다. 처음엔 미세한 떨림, 이내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진동. 나는 조심스럽게 챔질했고, 줄 끝에서 묵직한 감각이 손으로 전해졌다. 작은 붕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반짝이는 비늘이 햇빛에 닿아 빛났고, 그 생명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는 붕어에게 말했다. 고맙다고. 그리고 조용히 다시 물로 돌려보냈다. 오늘의 낚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마리의 붕어가 나를 깨웠고, 다시 삶 속으로 걸어갈 힘을 주었다. 붕어 낚시는 늘 그렇게 나에게 작은 회복과 묵직한 성찰을 남긴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도 괜찮다. 조용히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어쩌면 이 붕어 낚시터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장소에서 가능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찌는 여전히 조용히 물 위에 떠 있다. 오늘 나는 낚시를 했고, 동시에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저 기다리는 동안에도 많은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들은 다시 나를 바꾸었다. 낚시는 그렇게 조용한 반성을 남긴다. 그리고 나는 그 반성 위에 내일을 쌓는다. 내일은 더 잘 살아보자고,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고,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자고, 나에게 다짐한다. 오늘의 붕어는 작았지만, 오늘의 깨달음은 크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물가의 침묵 속에서 나를 건져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