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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한 마리와 우주의 질서(작은 생명과 거대한 의미)

by 남반장 202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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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꾼다. 언젠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깊은 자연 속에 들어가 오직 나와 물, 그리고 물고기만이 존재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 나는 그 꿈을 품고 긴 시간을 지내왔다.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깊은 산 속에 숨겨진 작은 저수지를 찾아 나섰다. 지도에도 이름이 표시되지 않은, 그러나 옛 고수들이 입을 모아 '붕어의 요새'라 불렀던 그곳.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오지,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그곳은 진짜 자연의 품이었다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침 안개가 저수지 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새들은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흔들며 노래했다. 물은 말없이 그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찌 한 번 세워보지 않았는데도 이미 충만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곳에서는 붕어를 낚는다는 행위조차 부차적으로 느껴졌다.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상한 감각. 그것은 시끄러운 도시에서 잊고 지냈던 어떤 본질을 다시 깨닫게 했다.

 

채비를 간단히 준비하고, 물가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인위적인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발소리도 죽였다. 붕어가 경계심이 많은 생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나 역시 붕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찌를 세웠다. 세상은 너무 조용해서 내 심장 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찌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몸을 굳히고, 숨을 참고, 모든 감각을 찌에 집중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챔질했다. 손끝에 전해진 묵직한 느낌. 그 짜릿함은 오랜 기다림과 함께 폭발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물살을 가르며 끌어낸 것은 손바닥을 훌쩍 넘는 건강한 붕어였다. 작은 저수지, 작은 입질이었지만, 내게는 세상의 어떤 성취보다도 벅찬 순간이었다깊은 오지에서의 낚시는 단순한 레저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작고 겸허한 존재인지 체험하는 의식과 같다. 여기서는 고급 장비도, 화려한 기술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자연에 대한 존중만이 유효하다. 자연은 인간이 원하는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흐름을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 붕어는 물속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기류와 온도의 미묘한 차이를 파악한다. 사람 역시 그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야만 이 고요한 전장에서 붕어를 만날 수 있다.

 

낚시를 하다 보면 종종 생각한다. 이 조용한 시간들은 물고기를 낚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한 것이라고. 붕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걷어낸다. 고요 속에서 나와 마주하고, 내 안의 혼란을 정리한다. 그러다 문득, 나는 깨닫는다.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결국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내 앞에 놓인 물과 찌,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순간순간의 흐름이라는 것을오지의 낚시는 그런 가르침을 더욱 극명하게 전한다. 여기에는 핑계도, 변명도 없다. 물고기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내가 부족했으면 부족했던 것이다. 결과를 외부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이 정직한 세계가 나는 좋다. 도시에서는 늘 변명할 거리와 핑곗거리가 넘쳐나지만, 이 작은 저수지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통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찾는다. 실패해도 좋다. 붕어 한 마리 못 잡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붕어가 아니라, 이 기다림과 겸손,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되는 감각이다해가 기울고, 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진다. 다시 짐을 꾸리고 돌아갈 시간. 붕어 한 마리를 품에 안았든, 빈손이든, 마음은 한없이 충만하다. 물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저수지를 바라본다. 안녕, 조용한 요새야. 오늘 나를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려보내줘서 고마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도, 오늘 이 고요한 감각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나를 다듬을 것이다그래서 나는 다시 오기를 꿈꾼다. 다시, 이 고요한 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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