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설렌다. 보통 사람들은 비를 피하고 싶어 하지만, 나에게 비는 또 다른 낚시의 신호다. 특히 붕어를 만나는 데 있어서, 비는 특별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잔잔했던 수면이 빗방울에 깨어지고, 물속의 붕어들은 평소보다 경계심을 덜어낸다. 비 오는 날, 붕어는 더 가까이 다가온다. 전날 밤, 나는 낚시 가방을 꾸렸다. 방수복, 방수천, 미끌거리는 땅을 버틸 튼튼한 장화. 그리고 낡았지만 가장 믿음직한 낚싯대 두 대.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틸 심지 같은 마음가짐도 함께 챙겼다. 대단한 준비는 없다. 그저 물가에서 조용히, 묵묵히 붕어를 기다릴 생각뿐이다. 이른 아침,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가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다 이내 그치기를 반복했다.
차를 몰고 소류지로 향하는 동안,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저수지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적막했다. 비 오는 날 낚시터는 언제나 한산하다. 이런 고요함을 나는 좋아한다. 서둘러 포인트를 골랐다. 수초가 듬성듬성 퍼진 자리. 물이 비에 씻겨 내려오면서 수초 근처에 먹잇감이 몰리기 마련이다. 가벼운 채비를 조심스레 던졌다. 빗방울이 수면 위를 때리며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찌는 간신히 흔들림을 견디며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낚시는 조용해야 한다. 우산을 치거나 파라솔을 설치하는 소리마저 조심스럽게,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모든 것이 한 톤 낮아진 세계 속에서, 찌 하나만을 바라본다. 한참을 기다리던 중, 찌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빗방울인지, 붕어의 움직임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찰나, 찌가 살짝 솟더니 이내 천천히 사라졌다. 한 박자 늦게 챔질했다. 가벼운 떨림이 낚싯대를 타고 손끝으로 전해졌다. 붕어였다. 비 오는 날 낚은 붕어는 유난히 색이 곱다. 은빛 비늘에 물비린내가 묻어 있었다. 손바닥을 넘어서는 크기는 아니었지만, 비에 젖은 손바닥 안에서 힘차게 펄떡이는 그 생명력은 무겁게 느껴졌다. '고맙다.'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우산을 꺼내려다 말고,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방수복을 뚫고 서서히 스며드는 빗물이 차가웠지만,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다. 흠뻑 젖은 대지, 축축한 공기, 흙냄새, 풀냄새. 그리고 붕어의 물비린내가 한데 섞여 진한 향기를 풍겼다. 이 냄새가 좋았다.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음이 멀어지고, 자연과 나만 남은 듯한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입질은 잦아졌다. 비가 내리면서 수온이 약간 내려갔고, 산소량이 늘어나 붕어들이 활발해진 것이다. 짧은 찌올림, 미세한 톡 건드림, 느릿한 끌림. 하나하나 긴장을 놓치지 않으며 챔질했다. 몇 마리 붕어를 더 낚았다. 크기는 모두 중치급 정도였지만, 나는 만족했다. 낚시는 결국 숫자가 아니다. 몇 마리를 낚았느냐, 얼마나 큰 놈을 잡았느냐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비 오는 날, 물가에 홀로 앉아, 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비를 맞으며 낚싯대를 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정오가 가까워오자, 빗줄기는 잦아들었다. 구름 사이로 어렴풋이 햇살이 비쳤다. 땅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흙내음이 더 짙어졌다. 포인트를 정리하며 다시 한 번 물가를 둘러본다. 내가 머문 자리에는 쓰레기 하나 없다. 오히려 눈에 띄는 비닐 조각 몇 개를 주워 봉투에 담았다. 오늘 하루, 붕어들과 자연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붕어들은 다시 수초 사이로 숨었다. 방금까지 함께 숨 쉬던 생명들이 다시 저수지 어딘가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의 터전이 오래도록 건강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언젠가 다시 이 물가에 앉아, 같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을 스치는 잔비를 바라봤다. 붕어의 물비린내, 비 냄새, 흙냄새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도 참 좋은 하루였다. 비가 내려서, 더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