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무도 없는 새벽(물안개 속을 걷는 마음)

by 남반장 2025. 11. 18.
반응형

아무도 없는 새벽, 세상은 스스로를 조용히 정리하는 법을 안다. 사람들의 숨결이 닿지 않는 시각,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그 적막 속에서 나는 또다시 낚시터로 향한다. 바람도 없고, 개 짖는 소리도 없고, 간혹 멀리서 기적처럼 들려오는 철길의 떨림조차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그 새벽의 침묵은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자라고 있던 감정의 이름 같았다. 오로지 한 사람, 나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만지듯 낚시대를 준비하고, 물가에 앉아 숨을 죽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풀잎의 차가운 이슬이 이른 새벽 공기의 투명함을 대신 설명하고, 물가에 내려앉은 물안개가 사방을 흐리게 만들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문다. 그 흐릿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내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늘 선명한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나는, 오히려 이 안개 낀 풍경에서 나라는 사람의 실루엣을 명확하게 느낀다. 낚시란 결국 자신을 향해 바늘을 드리우는 일이 아닐까. 어느 깊은 지점에 고요히 가라앉은 진심을 꺼내기 위한, 물고기보다 오래 숨죽인 감정을 건져 올리기 위한 기다림. 아무도 없는 이 새벽의 물가가 바로 그 기다림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늘-산-호수-고목-사진

 

물안개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연이 안개처럼 내 마음속을 스치고, 나는 그저 말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지만, 이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야 진짜 말을 시작할 수 있다. 낚시터의 새벽은 그런 장소다. 누구도 듣지 않지만, 그래서 가장 잘 들리는 말들이 흐르는 곳. 나는 그곳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낸다. 아직 어릴 적,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 낚시터를 찾았던 그날. 이슬 맺힌 풀숲을 헤치며 도착한 물가에서 아버지는 말없이 자리를 잡았고, 나는 그저 그 옆에 앉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는 몰랐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보인다. 아버지는 그날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정말로 붕어였을까, 아니면 삶 속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고요였을까. 나는 그날 이후 아버지를 흉내 내며 낚시를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말없이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이른 새벽의 안개 속으로 시선을 보낸다.

안개는 멈춰 있지 않다. 그것은 흐른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방향을 가진 채 흐른다. 그것은 시간의 형상이며, 감정의 흐름이다.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마음의 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찌 하나가 물 위에 떠 있다. 숨을 죽인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한 점의 붉은 불빛. 그것은 마치 내 안의 심장처럼, 아주 작지만 또렷한 빛을 내며 흔들린다. 찌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이 오고 가는 시간이다. 나는 그 정적 속에서 오래전 그리워하던 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사람과 나누었던 짧은 말들, 닿을 듯 닿지 않았던 손끝의 온기, 그리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우리는 어쩌면 모두 낚시꾼인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바늘을 드리우고, 희미해진 것을 다시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안개 속에서 그리움은 더욱 진해지고, 마음의 결은 더 선명해진다. 내가 이렇게 낚시터에 나와 있는 이유는, 물고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수적인 기쁨일 뿐, 진짜 이유는 이 시간, 이 공간, 이 고요 속에 있다.

낚시는 삶을 거꾸로 걷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멀리 나아가라고 요구하지만 낚시는 그 반대로, 더 느리게, 더 조용히, 더 가까이 머무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 나조차 멈춰 선 그 자리에 내가 정말로 만나고 싶은 내가 있다. 물가에 앉아 안개를 바라보는 나는 더 이상 역할이 아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동료, 누구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 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온전한 존재. 그래서 낚시터는 내가 돌아가야 할 하나의 풍경이자, 마음속 고향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이 기다림의 미학이, 나에겐 생의 숨결과도 같다. 붕어 한 마리의 입질이 없어도 괜찮다. 오히려 입질이 없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마주하는 진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시간, 오직 나만의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이는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낚시를 계속하는 이유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안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하늘은 빛을 되찾고, 물 위의 풍경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현실로 조금씩 돌아온다. 찌가 여전히 그 자리에 떠 있고, 텐트는 이슬에 젖어 있으며, 나의 손은 밤새 차가웠던 바람을 견뎌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다르다. 조금은 더 가벼워지고, 조금은 더 조용해졌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없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 하나가 생겼다. 낚시는 그렇게 내 삶에 아주 천천히, 그러나 깊게 스며들고 있다. 그것은 나를 바꾸는 방법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게 하는 방식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기 위한 탈출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고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자리. 그 자리를 나는 오늘도, 새벽의 안개 속에서 찾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 그곳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