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안개가 자욱했다. 차창을 흐린 물방울을 닦아내며 강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세상이 온통 흰색이었다. 낚시터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익숙한 발걸음으로 평소 자리를 찾아 걸었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잠잠했고, 나만이 그 고요 속에 있었다. 안개 속에서 낚싯대를 펼쳤다. 찌를 던지고도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 떨어졌는지 볼 수 없었다. 찌의 형체는 흐릿했고, 경계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나 자신의 의지 같았다. 명확하지 않고, 어딘가에 닿았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럼에도 나는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견뎠다. 오늘은 조황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불확실함을 견디는 것도 낚시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낚시는 언제나 기다림의 기술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다리는 것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붕어 한 마리였을까. 아니면 그 붕어에 걸려 함께 올라올 사소한 의미였을까. 어떤 날은 입질 하나에 하루의 생기를 얻기도 한다. 어떤 날은 찌가 움직이지 않아도 조용히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은 그 후자에 가까웠다. 안개 속에서 나는 나를 바라봤다.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풍경은 내 마음의 투사일지도 모른다. 미래는 언제나 안개 같다. 내가 바라는 것도 그 안에 있고, 두려워하는 것도 그 안에 있다. 낚싯대는 늘 그런 불확실한 공간 속으로 내던져진다. 찌가 꿈틀댈 때마다 내 마음도 움찔하고, 멈춰 있는 찌를 볼 때면 나는 멍하니 나를 들여다본다. 입질이 없는 날, 나는 내 안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 고기를 잡지 못해도 낚시터를 찾는 까닭. 낚시는 결과보다 과정이 진하다. 기다림이 쌓이고, 그 안에서 감정이 삭아간다.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견디는 일. 그것이 이 자리의 의미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수면 위로 숨결 같은 것이 내려앉았다. 찌는 보이지 않았고, 낚싯대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붙들고 싶었다. 잊힌 얼굴들. 지나간 계절. 내가 미처 다 건지지 못한 말들. 사람과의 관계도 낚시와 닮았다. 아무리 좋은 장비와 미끼를 써도,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미끼를 던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다. 안개 속의 하루는 늘 모호하다. 그러나 나는 이 모호함 속에서 평화를 느낀다. 세상이 분명한 선으로 나뉘는 날들보다, 흐릿한 날들이 내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사람은 언제나 확신을 원한다. 계획과 결과를, 논리와 예측을. 그러나 인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안개 속에서 보낸다. 낚시는 그 안개를 통과하는 연습이다. 고기를 못 잡은 날의 의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의 가치.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오늘의 낚시는 실패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나는 나와 더 깊이 만났다. 안개가 내 시야를 막아준 덕분에, 나는 내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삶은 늘 이렇게 역설적이다. 보이지 않을 때 더 잘 보이고, 잡히지 않을 때 더 많이 느낀다. 나는 오늘도 그런 하루를 보냈다. 안개가 걷힐 즈음, 나는 낚싯대를 접었다. 수면은 여전히 조용했다. 내가 지나온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마치 오늘 하루가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들이 내 안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는 것을. 낚시는 늘 말이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곳이다.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아마도 나 자신뿐일 것이다. 안개 속의 낚시는 마치 내면의 일기 같았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만 아는 언어로 적힌 하루. 그 속에는 미련도, 욕망도, 작은 용서와 다짐도 있었다. 고요한 시간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그것은 존재가 쉬어가는 방식이다. 조황이 없는 날, 나는 비로소 인간답다. 성공의 잣대에서 벗어나, 그저 살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 안개 속의 조황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