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어둠으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다. 밤은 빛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또 다른 빛의 세상이다. 도시에선 보이지 않던 별들이 밤하늘에 하나씩 피어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든 공간에선 나 자신이 조금 더 또렷하게 들린다. 나는 오늘 밤, 홀로 낚시터를 향했다. 새벽녘보다 더 깊은 어둠, 사람들이 모두 물러난 뒤의 정적,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검푸른 수면. 이 밤의 정적을 사랑한다. 그것은 죽은 침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요, 쉼표처럼 잠시 멈춘 시간의 틈. 그 틈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고, 놓쳤던 것들을 되짚는다. 낚싯대를 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탄성, 바람결에 살짝 흔들리는 낚시줄의 소리, 찌가 수면 위에 닿는 작은 물방울 하나.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어둠 속에서는 눈보다 귀가, 귀보다 마음이 더 크게 작동한다. 빛으로 가득한 낮에는 듣지 못했던 속삭임들이 이 고요한 밤에 들려온다. 그것은 물소리일 수도 있고, 나무가 몸을 비틀며 내는 낮은 신음일 수도 있고, 혹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부터 울리고 있던 어떤 질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왜 밤낚시를 할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어둠 속에서 고요히 기다리는 그 시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수련이며, 회복이며, 내면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의식과도 같다. 낮에는 도무지 들여다볼 수 없었던 내 안의 그늘과 상처들이 밤이 되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둠을 무서워한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솔직한 나의 얼굴은 바로 이 어둠 속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찌는 물 위에서 미동도 없이 떠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침묵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오늘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밤이 되면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름. 그는 별빛처럼 조용하고,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은 선명했다. 마치 오늘 밤처럼. 그와 함께 했던 밤낚시는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날의 냄새와 기온, 말없이 건네던 시선과 손끝의 떨림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흐르고 있다. 밤은 그 사람의 시간을 데려온다. 떠나간 사람이란 결국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고 그리운 순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찌는 물 위에 있지만, 그 시선은 그 시절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고요 속에는 사랑이 있고, 상실이 있고, 회한과 수용이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잃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실은 밤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 명확해진다. 나는 지금 낚시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기억을 낚고 있다. 떠난 사람, 지나간 계절, 사라진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찌의 끝에 매달려 있다. 입질은 없다. 고기가 오지 않아도 좋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 누구보다 충만하다. 왜냐하면 나는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그 기다림 안에서 진실을 보고 있으니까. 낚시는 기다림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들여다보고, 놓아주는 일이다. 나는 밤낚시를 하면서 배운다.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고기는 내가 원할 때 오지 않고, 원하는 고기가 낚이지 않으며, 내가 공들인 시간이 항상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더 진실하다. 진실은 늘 예측 불가능한 법이다. 그 불확실성 안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운다. 고요히 기다리는 법,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 결과 없이도 살아가는 법. 별들이 더 많아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낮에는 결코 볼 수 없던 무수한 빛들이 떠 있다. 그것이 바로 밤이 가진 힘이다. 숨겨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는 시간. 내 안의 별들, 잊혀졌던 감정들, 어쩌면 용서조차 하지 못했던 나 자신까지. 나는 물가에 앉아 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해 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 모든 걸 허무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찌를 바라보며 밤을 지새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의미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삶의 진실은 늘 조용하고 사소한 순간에 숨어 있다는 것을. 찌가 살짝 흔들렸다. 물결일까, 고기의 입질일까. 나는 낚싯대를 움켜쥐며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인다. 그리고 이내 다시 고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찰나의 떨림, 그것 하나로 나는 또 하루를 견딜 수 있다. 삶은 늘 거대한 무언가로 우리를 압박하지만,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런 작은 순간들이다. 별빛 한 줄기, 찌의 떨림 하나,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오래된 이름. 이 밤, 나는 누구의 시선도 없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낚시터에 앉은 한 사람, 이름 없는 밤, 끝없는 고요. 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가장 크고 빛나는 진실을 마주한다. 삶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빛이 바로 사랑이고, 기억이고, 나다움이다. 다시 한번 찌가 흔들린다. 나는 낚싯대를 든다. 무엇이 걸려 있든, 혹은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한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별빛처럼, 이 밤은 나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넌 지금, 진실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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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피어난 별빛(밤낚시의 고요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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