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노을은 언제나 슬프게 아름답다. 그 빛이 물 위에 닿을 때마다, 나는 마치 잊고 있던 감정을 불쑥 마주하게 된다. 붉은 빛이 강을 덮고, 그 속에서 찌 하나가 부서진 햇살처럼 떠 있을 때,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며 묵묵히 기다리는 법을 다시 배운다. 저녁 낚시는 조용하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고, 바람은 낮보다 느릿해지고, 새들의 울음도 무뎌지는 그때, 낚시꾼만이 홀로 강가에 남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황혼의 강가에서, 나는 오래전 기억처럼 떠오른 붕어 한 마리를 떠올린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기지만, 그날의 장면은 마음 어딘가에 깊게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친구처럼, 아주 멀리 있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존재. 그날도 오늘처럼 저녁이었다. 해는 서쪽 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고, 강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를 바라보다 문득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다. 바람 소리가 낮아지고, 노을이 강 위에 퍼질 즈음, 미세한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퍼지는 긴장감,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저항. 나는 서둘지 않았다. 찌는 천천히 가라앉았고, 낚싯줄은 물 아래로 고요히 사라졌다. 나는 손에 힘을 실었고, 낚싯대 끝에 전해지는 생명의 미동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물 밖으로 나온 그 붕어는, 붉은 노을을 등에 얹은 채 천천히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마치 어떤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붕어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강물로 돌려보냈다.
낚시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살리는 일보다 잡는 일에 익숙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 붕어를 잡지 않았다. 어쩌면 노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붉게 물든 물 위에서 버둥거리던 그 생명에게서 나는 어떤 말 없는 간청을 들은 것 같았다. 너는 나를 놓아줄 수 있겠느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손은 천천히 그 대답을 대신했다. 붕어는 물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낚시터에 남겨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기를 놓아보낸 뒤에 남는 허전함이 아닌, 오히려 가벼워진 마음이 나를 감쌌다. 어떤 존재는, 잡지 않아야 더 오래 남는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한 마리의 붕어든 간에. 그 이후로 나는 가끔 그 붕어를 생각한다. 특별한 표식이 있었던 것도, 유난히 크거나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저녁의 빛과 온도, 바람의 결, 그리고 내 손바닥에 닿았던 그 생명의 온기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낚시는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도 전혀 다른 날이 된다. 같은 찌, 같은 물결, 같은 나무 그림자도 그날의 기분과 사색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나는 오늘도 그 붕어를 떠올리며, 비슷한 저녁이 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 마리의 붕어가 같은 방식으로 나를 찾아와 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품는다. 하지만 그 기대는 결코 조급하지 않다. 오히려 기다림 속에 머무는 느긋함이 있다. 낚시는 결국 시간을 견디는 일이고, 삶은 기다림의 총합이니까.
노을은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강물은 그 빛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바람은 천천히 멈추고, 풀잎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붕어를 낚지 못했다. 아니, 낚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찌 하나를 던져두고, 그 위에 흩어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하루를 흘려보냈다. 사람들은 낚시에 대해 많은 것을 묻는다. 어디서 많이 잡히느냐, 어떤 미끼가 좋으냐, 몇 마리를 낚았느냐.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런 숫자와 결과가 아니다. 나에게 낚시는, 이렇게 고요한 저녁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다. 하루의 소음을 털어내고, 마음의 먼지를 정리하는 일.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그 고요함 속에서 삶을 바꾸는 만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게 한 마리 붕어든, 아니면 오래전 기억이든 간에. 노을은 점점 짙어진다. 붉은 빛은 주홍으로, 다시 자줏빛으로 변한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여전히 찌를 바라보고 있다. 찌는 미동도 없지만, 나는 조급하지 않다. 고요한 강물 위에 나의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 어쩌면 내가 낚고 싶었던 건 고기가 아니라 그 저녁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붕어 한 마리가 나에게 남긴 그 기억의 파편들. 그것은 그 어떤 트로피보다 소중하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낚시를 한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붕어 한 마리의 기억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