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언제나 조금씩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햇빛이 물러나며 그림자들이 길어지고, 소리는 줄어들고, 따뜻했던 기운도 조금씩 빠져나간다. 나는 오늘도 해 질 무렵 물가에 앉았다. 수풀 사이로 숨은 자리를 찾아 낚싯대를 세우고, 작은 낚싯불 하나를 켠다. 주황색 불빛이 내 앞에 조용히 맺힌다. 그 빛은 흔들리지 않지만, 주위를 감싸는 안개는 서서히 내려앉는다. 어딘가에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의 걸음이 느리게 멀어지고, 고요함만이 진해지는 시간. 저녁 안개 속의 낚시는 특별하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의 낚시가 삶을 견디는 방식이라면, 저녁 낚시는 삶을 보내는 방식이다. 오늘 하루가 조금씩 꺼지고 있다는 사실, 내가 속한 세상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 낚싯대 하나 들고 앉아 있는 이 시간이 그 모든 작별을 받아들이는 연습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에는 밤이 오는 게 무서웠다. 어두워지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어둠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그래서 나는 저녁이 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낮에는 내 마음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 모든 게 너무 선명하고 분주해서, 나도 거기에 섞여 흐르기 바쁘다. 하지만 저녁이 오면 다르다. 사람도 사물도 본모습을 잃고, 형태가 희미해질 때 비로소 나는 내 마음의 진짜 색을 본다. 낚싯불을 가운데 두고 어둠과 마주 앉으면, 그동안 미처 돌아보지 못한 감정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슬픔도, 후회도, 그리움도, 미련도. 물고기를 기다리는 그 텅 빈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낚시란 기다림이라 말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는 과거의 나를 만나고, 지금의 나를 용서하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긴 사유가 숨어 있다.
저녁 안개는 어느 순간부터 내 어깨 위에도 내려앉는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감촉은, 마치 오래된 기억 하나가 다가와 나를 감싸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런 시간 속에서 잊었던 얼굴을 떠올린다. 이제는 이름도 흐려진 사람들, 함께 낚시를 했던 기억,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았던 그 정적.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 침묵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시선이 얼마나 깊었는지. 저녁은 사라지는 것들이 속삭이는 시간이다. 사라졌기에 더 선명해진다. 이 안개의 부드러움 속에서 나는 떠난 것들을 용서하고, 지나간 것들을 끌어안는다. 낚시는 그런 추억의 부표다. 시간 속에 가라앉지 않게, 내가 잊지 않도록 찌 하나로 물 위에 남겨진 마음.
불빛은 점점 더 밝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주변이 어두워지기 때문이지, 불빛 자체가 강해진 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이 낯설지 않다. 살아오면서 내 마음의 빛도 그랬다. 누군가가 꺼진다고 했던 작은 용기 하나가, 외로움 속에서 오히려 더 환히 빛났던 기억. 낚시를 하며 그런 마음들을 자주 만난다. 홀로 있는 것이 외로운 게 아니라, 아무 감각 없이 흘러가는 게 진짜 외로운 것이라는 걸 안다. 저녁 낚시의 감성은 그런 마음을 감싼다.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 깊게 마음에 남는다. 물 위의 찌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고기도 쉬는 시간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낚시를 계속한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밤이다. 이 기다림 그 자체가 내겐 충분하다. 살아가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며 너무 많은 것을 놓친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로 한다. 불빛 하나, 바람 한 줄기, 그리고 안개 속의 고요함. 그것이면 충분하다.
바람이 바뀌고, 물 냄새가 더 짙어진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소리조차도 안개에 걸려 흐릿하게 들린다. 나는 낚싯대를 슬며시 거둔다. 이 밤은 물고기보다 내 마음이 더 많이 흔들린 날이었다. 흔들렸기에 더 깊어졌고, 더 가까워졌고, 더 투명해졌다. 나는 이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다시 배운 것 같다. 사람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커진다. 그리고 그 사라짐을 슬퍼하지 않고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조금 더 단단해진다. 낚시는 그런 단단함을 주는 시간이다. 멀리 떠나는 것을 응시하고, 다가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고, 머물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용히 혼자 해내는 일.
나는 낚싯불을 끈다. 주황빛은 작게 깜빡이다가 사라진다. 어둠은 단번에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나는 무섭지 않다. 이미 이 밤을 통과할 마음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낚싯대를 정리하고, 어깨에 묻은 안개를 털어내며 일어난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깜빡이고, 돌아갈 길은 여전히 길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걸을 것이다. 이 밤이 내게 준 생각들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사라지는 것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기억으로, 혹은 다른 사람으로. 나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밤의 낚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다. 아무것도 잡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 무언가를 건졌다. 그것은 물고기가 아닌, 내 안의 작별이었다. 그리고 그 작별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고요하고, 투명하고, 따뜻하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밤을 지나간다. 찌는 없지만, 내 마음 어딘가엔 여전히 그 빛이 남아 있다. 저녁 안개와 낚싯불,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과의 작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