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하늘이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흙냄새보다 먼저 코끝에 닿은 건 축축한 기억이었다. 어제는 맑았고, 내일은 개일 거라지만 오늘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나는 그날 낚시터로 향했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투둑투둑 유리를 두드리며 말 걸어올 때, 나는 늘 어린 시절 장마철을 떠올린다. 낡은 우산 속에서 작은 어깨를 말없이 움켜쥐던 엄마의 손,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조용했던 아버지의 눈빛, 그리고 마루 끝에 앉아 바라보던 흙길 위의 빗물. 그 모든 기억이 다시 떠오른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일부러 비를 맞으며 천천히 낚시터로 걸어갔다. 물안개가 흐르는 하천 가장자리는 고요했다. 소리 없는 빗소리가 강물 위로 내려앉았고, 풀잎은 젖어 몸을 낮추고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폈다. 오늘은 잡기 위해 낚시하는 것이 아니라, 떠올리기 위해 낚시하는 날이었다. 찌는 조용히 물 위에 올랐고, 빗방울은 그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내 기억 속에도 비는 그렇게 조용히 들어왔다. 어떤 사랑은 첫 만남이 비 오는 오후였고, 어떤 이별은 작은 소나기처럼 다가와 무너졌고, 어떤 우정은 비를 피해 함께 걸었던 골목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낚시를 하며 많은 이들을 생각했다. 낚시터는 그런 곳이다. 이따금 고요 속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의 마음이 들리는 곳, 찌 하나만 바라보며 지난 수십 년의 얼굴을 떠올리는 곳. 나는 그날의 빗속에서 오래전 떠난 친구를 기억했다. 함께 낚시를 배우며 어깨를 부딪치며 웃던 그 얼굴, 입질이 왔을 때 더 크게 소리치던 그 사람, 그리고 어느 날부터 연락이 끊기고 한참을 찾다가 결국은 사진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된 그. 나는 그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불러보았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 존재를 다시 세상에 불러내는 일이다. 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젖은 낚싯줄을 타고 내리는 빗물처럼, 마음의 한 구석도 조용히 젖어 들어갔다. 낚시는 슬픔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취미다. 아무도 내게 왜 울고 있는지를 묻지 않고, 왜 말이 없는지를 추궁하지 않는다. 낚싯대 하나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그 끝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물고기 아닌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한다. 나는 어릴 적엔 비 오는 날 낚시터에 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산을 쓰고, 비를 맞고, 흙탕물에 신발을 젖히며까지 왜 저런 고생을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비가 내려야 비로소 꺼내지는 기억이 있고, 비가 내려야 차분히 풀어지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햇살만 가득한 날엔 보여주지 않는 마음의 그림자가 있다는 걸. 내 낚싯대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치 오래된 라디오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그건 사랑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미처 사과하지 못한 얼굴일 수도 있으며, 아직 마음에 남은 누군가의 뒷모습일 수도 있다. 비는 그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흠뻑 젖어야만 볼 수 있는, 젖은 마음이 비추는 과거의 풍경. 낚싯대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물고기가 걸려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기억은 그런 식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다른 누군가도 따라오고, 하나의 장면이 열리면 줄줄이 연결된 시간들이 밀려온다. 비는 그런 기억을 흠뻑 적셔 다시 새롭게 만든다. 새로움을 가장한 낡은 감정. 나는 오늘 한 마리도 낚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다. 물고기를 낚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이 하루를 누렸다. 내가 낚은 건 물고기가 아니라, 잊었던 마음, 젖은 추억, 그리고 다시금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다. 찌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리고 빗방울은 그 위를 조용히 맴돌았다. 나는 다시 낚싯줄을 들어 올렸다. 줄 위로 흐르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시간처럼 느껴졌다. 사라져버릴 것 같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닿을 수 없을 것 같지만 결국은 내 손끝에 와닿는. 낚시란 결국 그런 것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을 다시 불러들이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일. 오늘도 나는 낚시를 하며 나를 다시 낚았다. 젖은 낚싯줄 끝에, 이름 모를 추억이 달려 있었다. 그게 사랑이든, 슬픔이든, 아니면 기쁨의 편린이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고, 다시금 마음속에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이었다. 비는 그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쿨러, 젖은 옷, 그러나 가벼운 마음. 그것이 오늘 내가 가진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낚시터를 떠나며 뒤돌아본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하늘은 다시금 맑아지고 있었다. 나는 안다. 이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다시 비가 내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이 자리에서 낚싯대를 들고, 젖은 기억을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나의 낚시이자,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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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가 내리던 날, 젖은 낚싯줄 끝에 매달린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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