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시작하게 된 첫 계기는 아마 누군가의 권유였을 것이다. 특별한 철학이 있었던 것도, 대단한 열정이 앞섰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이 조용한 취미가 내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낚시는 말보다 침묵이 우선되는 행위였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에도 특별한 사색 없이 그냥 찌를 바라보는 시간. 그 침묵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고,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 침묵이 오히려 내가 나 자신과 가장 깊이 만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은 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대화, 음악, 방송, 알람, 경적, 광고… 쉴 틈 없이 들려오는 외부의 소리는 내가 나를 돌아보는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낚시는, 이 고요한 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의 연습이었다. 찌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단절되고, 점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철학자가 묵상하는 자세와도 같았다. 세상의 원리와 인간의 본성, 삶의 방향성과 같은 거대한 물음을 굳이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침묵 속에서 그 무게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낚시터에 앉아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무색해진다. 시계는 움직이지만, 내 몸과 마음은 어떤 물리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찌를 바라보며 그저 머무는 시간, 그것은 철학적 사유가 가장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상태였다.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물음을 던지지 않아도, 나는 그 순간 존재 그 자체로 머물렀다. 고기를 낚느냐 낚지 못하느냐는 부차적인 일이 되었고,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가’였다. 그것은 마치 철학자가 진리를 찾기 위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 그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되듯이, 낚시도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 삶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일이 되었다. 찌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시에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 되었고, 수면 위에 번지는 작은 물결은 내 안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반사였다. 침묵 속에서 나는 질문을 던지고, 찌의 움직임은 그에 대한 자연의 답변처럼 느껴지곤 했다. 어느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수면 위에는 잔파도가 끊임없이 일었다. 그날은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왠지 모를 충만함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하루가 사실은 나를 많이 변화시킨 하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버텨야 하는 삶의 의미를 떠올렸고, 잔파도 속에서도 집중을 놓지 않으려 애쓴 내 자세에서 의지의 힘을 배웠다. 철학은 삶을 해석하는 렌즈라고들 하지만, 낚시는 삶을 체험하는 직접적인 도구였다. 몸으로, 감각으로, 그리고 침묵으로 삶을 느끼게 했다. 때로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손끝의 감각이나 가슴의 떨림으로 다가왔다. 낚시는 나에게 삶의 진실을 논리나 개념이 아닌 온몸의 감각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고요한 시간을 철학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느끼는 이유였다.
어떤 날은, 낚시터의 물 위로 달빛이 번진다. 달빛 아래서 낚싯대를 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마치 우주 속의 작은 점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그렇게 작은 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품으며, 어떤 기다림을 선택하는가는 절대 가볍지 않다. 나는 이 낚시터에서 그 점 하나의 무게를 배우고 있었다. 물고기를 기다리듯, 어떤 진실을 기다리고, 어떤 관계를 기다리고, 어떤 삶의 전환점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나를 더 단단하게, 더 겸손하게 만든다. 철학은 늘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낚시터에서 나는 그 질문을 굳이 말로 하지 않는다. 그저 찌를 바라보며 그 질문들을 내 안에 담아두고, 하루라는 시간을 조용히 보내며 서서히 체화한다. 그 물 위에 뜬 찌 하나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도, 낚시는 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고요한 물 위에 비친 나의 그림자는 내면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고, 찌가 흔들릴 때마다 나의 집중도 함께 흔들린다. 삶이란 얼마나 연약한가. 작은 물결 하나에도, 작은 변화 하나에도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다잡는 법은 소란한 세상이 아니라 조용한 침묵 속에서 배워야 한다. 나는 낚시를 통해 내 마음을 바라보고, 다스리고, 다시 돌아오는 법을 배웠다. 철학책을 읽으며 고민했던 수많은 개념들보다, 찌 하나를 응시하며 느낀 한 줄기 깨달음이 더 오래 남는다. 그 깨달음은 구체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삶의 진실이 늘 언어로 설명되지 않듯, 낚시의 시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완전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도 참 잘 머물렀다고. 많이 낚지 못했지만, 많이 기다렸고, 많이 들여다보았다고.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성장했다고. 낚시는 나에게 가장 깊은 대화를 선물해주는 시간이다. 누구와도 하지 않는, 오직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 그것은 철학자가 밤새 책상 앞에서 사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장소가 물가일 뿐, 매개가 찌일 뿐이다. 나는 내일도 이 침묵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낚시터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철학적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낚시터는 나의 사색의 방이며, 침묵의 교실이고, 살아 있는 철학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