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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시간 – 붕어낚시가 가르쳐준 경청의 미학

by 남반장 2025. 5. 1.

나는 오래전부터 붕어 낚시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흔히 낚시를 '고요한 기다림'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것을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붕어 낚시는 유독 정적이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긴 시간 동안 움직임 없이 앉아 있어야 하고,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과정은 마치 인생의 어느 순간처럼 느껴진다. 계획을 세우고,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낚시든 인생이든 다른 결과가 찾아온다붕어 낚시를 하며 느낀 것은, 이 고요한 기다림이 인간의 정신을 다듬는 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초조했다. 찌가 움직이지 않으면 괜히 채비를 다시 점검하고, 자리를 옮길 핑계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붕어 낚시는 조급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결코 미소 지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이 차분해질 때, 모든 감각이 열리고, 작은 입질조차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경험은 마치 인생의 교훈 같았다. 때로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푸른-하늘-아래-푸른-호수-사진

 

붕어 낚시터의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물속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흐른다.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수초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고, 붕어는 먹이를 찾아 천천히 움직인다.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상상하고 해석한다. 바닥 지형은 어떨까, 수온은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붕어는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으려는 이 노력은 인간의 본성과 닮아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읽으려 하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려 애쓴다. 낚시는, 그러한 인간 본능을 조용히 자극하고 다듬는 작업이다붕어 낚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 바로 '겸손'이다. 낚시는 준비와 기술이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갖췄다 해도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물가에 앉아 있으면 절실히 느끼게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자연 앞에서는 하나의 작은 존재일 뿐이다. 겸손히 자연을 받아들이고, 붕어의 리듬에 맞춰 기다릴 때 비로소 한 마리 붕어를 만날 수 있다. 인생도 이와 같다. 노력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운과 타이밍이라는 큰 흐름 앞에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붕어 낚시는 나에게 사색의 시간을 준다. 물가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지나간 일들, 후회했던 순간들, 미처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 찌를 바라보며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억지로 꺼내려 하지 않아도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이 조용히 올라온다. 붕어 낚시는 마음속 먼지들을 털어내는 시간이다. 복잡했던 감정들이 가라앉고, 오래 묵은 아쉬움들도 서서히 물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낚시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조금 가벼워진 마음과 함께다가끔은 생각한다. 인생도 붕어 낚시 같다고. 수없이 많은 선택과 기다림, 조심스러운 접근, 그리고 불확실한 결과.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붕어를 낚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낚시터에서 흘린 시간들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이다. 나는 조금 더 느긋해졌고, 조금 더 깊어졌으며, 조금 더 겸손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이 아마 붕어 낚시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그래서 나는 오늘도 낚시대를 들고 물가로 간다. 꼭 붕어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용히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고요 속에서 삶의 깊이를 다시 새기기 위해. 기다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과를 강요하지 않고, 흐름을 받아들이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매번 조금씩 성장한다. 붕어를 기다리는 시간은, 결국 나 자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