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언제나 흐른다. 산골짜기의 실개천도,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도, 바위를 넘나들며 비명을 지르는 계곡도, 그리고 그 어느 날 내가 찾았던 강가의 저 흐름도, 모두 멈추지 않고 흘렀다. 나는 그런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의 언저리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고, 낚싯대를 드리운 채 멍하니 물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생각도 떠내려가 버렸다. 흐르는 물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생각이 들키고 감정이 드러난다. 물은 그것을 다 알아차리는 듯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를 씻어낸다. 그러니 낚시는 늘 그 흐름 앞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였다. 미끼를 던지는 것도, 찌를 지켜보는 것도, 결국은 흐름 속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 내가 어디로 흘러갈지, 무엇과 부딪칠지, 어떤 순간에 멈출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믿고 맡기는 일. 인생이란, 어쩌면 그토록 단순한 진리로 돌아가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날, 물살이 꽤 빠른 강변에 자리를 잡았다. 낚시꾼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고, 고기를 낚기에는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수심도 들쭉날쭉했고, 유속도 고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가 좋았다. 물이 소리 내며 흐르는 소리가 좋았고, 바람이 강둑에 닿아 풀잎을 일렁이게 하는 그 미세한 떨림이 좋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마치 세상이 모두 지나가버린 자리,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음의 빈터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낚시는 핑계였고, 나는 그 흐름을 마주하는 일이 진짜 목적이었다. 찌는 물살에 흔들리다 이내 다시 중심을 잡았고, 나는 그 모습에서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흔들리되 다시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흐름은 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자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 한때 뜨겁게 열망했던 꿈, 지나쳐 온 계절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말과 침묵들. 물은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삼키고 떠나보낸다. 나는 그 뒤를 바라보고 있을 뿐. 붙잡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물가에 앉아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뻐근해지고, 찌를 바라보며 한숨처럼 사라지는 추억을 조용히 떠올리게 된다. 그 모든 감정들이 찌에 매달려 수면 위를 부유하다 이내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빈 손으로 그 자리를 응시한다. 그러니 낚시는 상실을 연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지 않을 가능성을 견디고, 떠나간 것을 받아들이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 마음이 다시 흐름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바라며.
나는 언젠가 흐르는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그 한 방울이 퍼져나가다가 이내 흐름 속에 섞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감정도 저렇게 흘러가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장면은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낚시를 하며 미끼를 던지는 일도 어쩌면 그런 행위다. 내 감정을 물에 한 방울 흘려보내는 일. 물고기가 그 감정을 물어줄지 아닐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흘려보낸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낚시는 그리움의 형식일 수 있다. 내가 잊지 못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가만히 풀어내는 방식. 물은 그것을 다 들어준다. 비록 대답은 없지만, 물살은 분명 나를 알아주는 눈빛으로 반짝인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낚시를 좋아하게 된 건, 흐르는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들. 붙잡히지 않는 것들. 언제나 멀어져가는 것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자라왔고, 결국엔 그 속에 나를 맡기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흐름에 휩쓸리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그 흐름을 이해하고 싶었다. 왜 어떤 사랑은 그렇게 쉽게 떠나는지, 왜 어떤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지, 왜 내 마음은 그렇게 자주 흔들리는지. 그 해답은 어쩌면 강가에 앉아 찌를 바라보는 그 순간, 아주 조용히 흘러들어온다. 말이 아닌 감각으로. 문장으로는 옮길 수 없는 직관으로. 그래서 낚시는 내게 책보다 깊은 깨달음을 주곤 했다. 삶은 결국 떠나는 것들 속에서도 다시 살아내야 하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지탱하는 힘은 기다림이라는 사실.
그날 강물은 유난히 맑았다. 바닥의 돌들이 보일 정도였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도 간혹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맑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맑음 속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투명하되 불안정한, 흔들리되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나도 그 물처럼 흐르고 있었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낚시터는 거울이었다. 흐르는 물이 내 안의 풍경을 비추어주는 커다란 거울. 나는 그 거울 앞에서 나를 숨기지 못했고, 결국은 인정해야 했다. 나는 아직도 많은 것을 잊지 못했고, 많은 것을 흘려보내지 못했으며, 그 흐름 앞에서 종종 멈춰 서 있곤 한다는 것을. 하지만 괜찮다. 흐르는 물 앞에서는 멈춰 서는 것도 흐름의 일부일 수 있다.
해가 지고 강물은 점점 어두워졌다. 수면 위의 반짝임도 사라졌고, 물살은 더욱 깊고 조용해졌다. 나는 그 깊이를 느끼며 낚싯대를 거두었다. 고기를 낚지 못한 날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내가 던졌던 모든 감정이, 말 없는 고백이, 이제는 강물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흐름 속에서 나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어떤 마음으로 다시 이 자리에 앉게 될지, 조용히 궁금해졌다. 낚시는 그래서, 늘 다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다음 흐름, 다음 기억, 다음 마음. 오늘이라는 시간은 그 흐름 속에 작은 조각 하나로 남고, 나는 그 조각을 간직한 채 다시 걷는다.